찬양집 많은물소리를 편찬하신 황병구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펌.
오래 전에 긁어놨었는데, 읽을 때마다 가슴을 뛰게 한다.
(이 글은 22년전 1989년 10월 서울대문화관에서 있었던 [경배와 찬양의 대축제]에서 했던 황병준 님의 간증문입니다. 일종의 사료에 해당하는 이 간증문을 페북 친구들과 나눕니다. 한국교회와 사회를 돌아볼 때 아직도 이 고백은 유효한 듯 합니다. 황병준 님은 당시 아크로폴리스찬양모임 및 뜨인돌 운동을 함께 시작했던 저와 동갑내기 오촌 친척입니다. 제가 당숙부이긴 하지만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 언제나 저보다 늠름했던... 그래미 어워드의 최우수 녹음상 수상 이후 클래식 녹음계의 거장으로 많은 음악인들과 뜻있는 작업을 진행하는 전문인이지요. 백주년기념교회에서는 찬양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관악학우 여러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사랑의 대학부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전기공학과 3학년 황병준 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제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느꼈던 기쁨과 아픔, 안타까움을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누기 위함입니다.
제게 있어서 찬양은 기쁨이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죄로 죽었던 나를 죽음에서부터 살리신 것입니다. 죄가 없던 시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의 모습이 회복된 것입니다. 더구나 나만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악의 세력과 불의를 멸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통일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분이 온 우주의 주인이요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요. 그래서 저의 찬양은 기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특권인 동시에 본연의 자세요 기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제자의 길을 걷는 친구들과 또 선배님, 후배들이 찬양하는 것이 저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찬양하는 나의 모습 속에서 내가 무언가에 속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학부에서,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셨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왔을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신문의 뉴스를 볼 때,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이 만물의 주인이심이 분명한데, 그리고 우리 학교의 주인이심이 분명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교의 친구들은 우리들을 중세시대 12C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금욕주의자, 순응주의자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자기 개인의 경건에 도취되어 모일 때마다 저들의 신에게 무엇을 달라고 부르짖는 자들로 보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은 아예 그들의 논쟁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큰 벽이, 절망감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학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학교에 없었습니다. 이 국가와 민족의 주인이신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친구가 죽어가고, 폭력이,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에 우리는 여전히 이미 왕이 아닌 하나님을 왕이라고 골방에서, 교회에서 우겼습니다. 학내에서 친구들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고 전경들이 돌에 맞아 실신하는데도 우리는 그래도 하나님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십사고 늘어 놓았습니다. 이제 찬양은 내게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통이었습니다. 부담감이었습니다. 무언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너무나 확실하였기에 그분이 학교의 주인임을 온 세상의 왕이심을 알려야겠다고, 그리고 실제로 정말 실제로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선배님이 군대에 가기전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절대로 뭇 인간들의 알량한 투쟁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증거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모자라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습니다.
작년 10월제 기간 중에 우리의 안타까움과 아픔을 모아 아크로에서 찬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옛날같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온전히 하나님이 우리 학교와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왕이시라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그의 거룩하신 공의를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것처럼 그분의 주되심을 세상에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고난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낮아짐으로 인해 그분의 주인되심이 세상 사람들에게 확인만 된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가난할 수도 있어야 하고, 고난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전하기 위해 부조리와 모순, 눈에 보이지 않는, 직접보이는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철저히 보수적이어야 하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철저히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한 신앙의 선배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 또한 약하디 약한 사람임을 인정하기에 그분께 매어 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것 같지만 금방 그분의 명령을 잊어 버립니다. 내가 이 정도는 하는구나 하고 교만한 마음에 빠집니다.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이렇게 살자, 십자가를 달게 지자, 가난하게 살자 라고 하고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호와를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 그렇지만 기쁘게 그분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그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왕권과 주권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그날이 곧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형제들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낮추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그분의 공의와 사랑을 위해 고난을 달게 받을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만족과 배부름을 위해 있었던 것을 다시 한번 회개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온전히 하나님께 경배와 찬송을 드리며 소외받고 억압받는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하려는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의 Incarnation이 나의 낮아짐이 되기를 전심으로 간구합니다.
끝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지만 부담스러워 하는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제 간증을 마치려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98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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