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다(42). 그것을 보고 예수님은 이 과부가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한다(43).
많이 접하는 본문이다. 보잘 것 없는 과부의 헌금을 넉넉히 받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나오는 설교도 많다. 이런 류의 설교는 흔히 드릴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금액이 아닌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그런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우리의 것을 내어드려야 한다는 식으로 귀결된다. 과연 이 본문은 그러한 의도로 쓰여졌을까?
성경사전에서 렙돈의 정의를 찾아봤다.
렙돈 : 그리스의 최소 동전 단위. 호리로 불리기도 한다(눅 12:59). 중량 1.7g, 앗사리온의 8분의 1, 고드란트의 2분의 1에 해당된다(막 12:24). 예수께서는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칭찬하셨다(눅 21:1-4).
지금으로 치면 오백원짜리 두개를 넣었다고 보면 적절하겠다. 동전을 넣는 순간 헌금함 바닥에 짤랑 하는 소리가 났을 것이고, 주위의 시선을 끌기도 했을 것이다.
41-44절만 본다면 예수님이 과부를 칭찬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해당 구절의 앞뒤를 살펴보자.
36-40절에서 예수님은 서기관을 질책한다. 몇 가지 근거를 드는데, 그 중 하나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것이다.
13:1-2에서는 성전을 나가시며 성전의 화려함에 심취한 제자들에게 이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성전이 화려하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는가? 과부를 착취하는 서기관을 비판(38)하다가 헌금하는 과부를 주목했으며(43-44), 서기관이 있고 과부가 헌금을 낸 그 장소가 무너질 것이라 얘기한다(13:2).
많이들 오해하는데, 사실 예수님은 과부를 칭찬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냈다고 했을 뿐이다. 앞뒤 문맥이 없다면 칭찬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과부를 착취하면서 기도는 근엄하게 하는' 서기관을 질책(38v)한 후 한 이야기라면 의미는 달라진다. 그것은 자연히 서기관 질책의 연장이 된다. 이 과부는 그 질책의 명확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저것 봐라. 저들은 생계가 곤란한 과부의 생활비마저 받아가고 있다'
나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헌금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단, 이 본문은 그런 맥락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부의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헌금을 받아내는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질책이었고, 그 불의가 이뤄지는 성전에 대한 사망 선고였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1장도 앞뒤 문맥이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서기관 질책 - 과부 언급 - 성전 무너짐 예언)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커스 7집과 세월호 헤프닝 (0) | 2015.04.20 |
---|---|
중간으로 으쌰으쌰 (0) | 2015.04.09 |
보험가입 권유를 받으며 (0) | 2014.12.23 |
리그베다 위키 (0) | 2014.12.05 |
마지막 집세 (0) | 2014.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