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장 방문 후기

문화 2015. 4. 30. 10:50

2년 전 이 후기 썼다가 수련회장 주인이랑 티격태격 했다. 결국 글 내리는 걸로 마무리됐지.

시간도 제법 흘렀으니, 수련회장 이름만 지우고 다시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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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수련회로 방문한 곳.

사진은 없고 정 사진이 궁금하다면 [ㅇㅇㅇㅇ하우스]의 네이버 검색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 

ㅇㅇㅇㅇ하우스 블로그를 참조해 주세요.


거기 머물며 느낀 장단점을 적어볼까 하였으나, 굳이 단점은 쓸 필요는 없겠다 싶네요.

긍정적으로 가겠습니다, 긍정적으로! 함정 조금만 파고.


1. 자체 취사가 불가능하고 누구든 예외없이 사모님이 해주는 밥(6000원)을 먹어야 하므로 식사 담당이나 당번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미료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식 밥상을 추구하므로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김치는 열 몇가지 양념을 넣어 만들어 흔히 접할 수 있는 김치와 다른 맛이기에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이런 맛의 김치도 있구나 하고 견문을 넓힐 수 있구요. 고기류의 메인메뉴는 사모님이 직접 배식해 주시므로 편식 또는 과식할 위험도 없습니다. 과자와 컵라면 소비량이 급격히 상승한다는게 함정.


2. 건물이 산 중턱 깊숙한 곳에 있어서 버스가 들어갈 수 없고(스타렉스는 진입가능), 휴대폰도 잘 안 터지므로 이기적 문명과 떨어져 있을 시간을 제공합니다. 집회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음은 당연지사. 뿐만 아니라 엠프, 스피커 등의 장비도 전혀 없기에 임원이나 찬양팀의 음향 시스템 장비 사용기술을 한 단계 향상시켜 줍니다. 에어컨을 심하게 틀면 북극곰이 살 곳이 줄어드는 것도 일깨워 주어 지구에 참 무심했던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되지요. 북극곰은 수영을 잘 한다는게 함정.


3. 화장실은 수세식이지만 재래식의 향기가 나기에 도무지 참을성이 없는 요즘 아이들의 인내심을 길러주고, 앞으로는 학교 공공화장실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자연에서 뛰놀며 여러 풀벌레와 어우러져 놀았던 부모님 세대의 마음을 느껴 보라고 각종 귀뚜라미와 곱등이, 팅커벨급 나방들도 심심찮게 나타나주니 퍼펙트한 친환경적 자연의 배움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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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 회장으로 선출되기 전부터 이걸 걱정했을 정도다. 내 성에 직분을 붙여 강회장이라고 부르는데, 이게 끔찍하게 싫었다. 이유는 별 거 없다. 난 권위주의를 혐오하고, 찬양팀장을 할 때 강팀장이란 호칭도 별로였지면 특히나 회장이라는 호칭은 그 권위주의의 끝판왕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냥 격식없이 내 이름으로, 형 오빠로 불리는 게 좋았다. 그래서 2015년을 시작하는 리더MT 때 회장 호칭 없이 편하게 불러줄 것을 회장의 권위로 주문하기도 했다. 물론 그 호칭은 통상적인 것이고, 쓴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물의가 일어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 주문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렇다는 것을 덧붙여 부탁하는 형식으로 얘기했다. 대부분 이해해 주었고, 4개월이 지난 지금 나에게 그 호칭을 쓰는 리더는 없다. 가끔 무의식적으로 회장이라 했다가 '아참 회장이라 부르는거 싫어하지'라며 자체검열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결혼한 선배들은 '우리 강회장님~ㅋㅋ' 으로 부르기도 하고, 리더가 아닌 후배들도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식의 인사를 종종 한다. 이럴 때마다 설명을 덧붙였다간 설명충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게다가 권위주의는 타파할 대상이라 쳐도 회장이란 호칭을 싫어하는 건 내 개인 취향일 뿐인데, 그걸 모두가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제는 그냥 썩소씩 웃고 받아들이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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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말로 기억한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마커스 7집을 보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마커스 7집 소개글에 세월호 언급을 보고 분노한 듯.(이유는 뒤에서 설명) 뜻하지 않게 페이스북에서 제법 이슈가 되었고, 찬양앨범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네임드 사역자들도 댓글을 달았다. 한 찬양사역자의 설명으로 글쓴이가 마커스 앨범 소개글의 오독을 인정했고, 뒤늦게 마커스 멤버 한 분이 차분하며 겸손한 댓글을 써서 압도적인 좋아요를 받으며 훈훈하게 끝나가는 분위기까지 확인했다. 현재 그 글은 글쓴이가 본의 아니게 논란이 커진 것 같다며 삭제한 상태.오독한 게 드러나서 부끄러웠겠지


 추후 이런 기사도 나왔다(페이스북에서 마커스 심종호 씨가 오해라고 탄식하며 링크하여 보게 되었다). 이 기사를 쓴 기자 겸 목사는 위 페이스북 글쓴이를 언급하며 그분과 같은 오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사의 논지에 동의하고 문제의식에도 공감하는데, 오해로 점철된 도입부가 좀 아쉽다.나 따위는 가볍게 씹어먹는 필력이란 건 넘어가자 이쯤되면 마커스의 소개글에 원죄가 있다는 주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문단이 오해하기 좋게 구성되었다. 여담인데 소개글이 문장력은 좋으나 문단 간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성했거나 초안에서 세부적인 수정을 많이 한 것 같다.


문제가 된 마커스 앨범 소개글 일부를 살펴보면... (전문은 여기서 확인)


(전략)

그와 함께 2014년 4월, 이 나라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인 ‘세월호’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이 땅의 수많은 죄악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고, 더불어 이 세상의 모습을 비추는 듯한 우리 ‘교회’들의 상황을 마주하며 혼돈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가 이 시간 속에서 이 상황을 마주하며 과연 무엇을 말하고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시대적인 상황을 보며 ‘교회’를 주제로 하여 오랫동안 앨범을 기획하며 준비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가,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이상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멤버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마음이 있어서 1년 가까이 준비해온 과정을 고스란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후략)


정리하자면 마커스는 앨범준비를 1년 가까이 하는 중->세월호 사건 일어나서->준비한 1년의 과정을 접고->다른 방향으로 앨범을 준비했음 을 말하려 했는데, 몇몇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아파하며 1년 가까이 앨범준비를 했으나->멤버들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셔서->접고 다른 주제로 앨범을 냈다 로 이해한 것. 세월호 사건 11개월 후 발매된 앨범인데? 어제 예배하면 오늘 앨범이 뚝딱! 마커스 글만 읽어보면 진짜 그런 의미로 이해되는건 함정


논란의 시작이었던 페이스북 글에 달린 댓글들은 세월호 이후 마커스 내부에서 실제로 치열한 고민이 있었음을 얘기한다. 당연한 얘기다. 마커스 앨범엔 삶의 예배를 강조한 노래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2집의 [부르신 곳에서]. 나 역시 내가 속한 선교단체에서 삶과 상황이 없는 진공 상태의 예배는 존재할 수 없다고 배웠다. 


당시를 떠올려보자. 너무도 괴로웠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어노인팅 9집) 전능하시고 신실한 분이라는 고백이 이 상황에서 가당키나 한 건가? 아니, 정말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 건가? 300여 명이 서서히 죽어가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셨단 말인가. 이 순간 부르는 찬송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중구난방으로 머리를 떠돌았다. 곧 다가올 부활절을 차마 기뻐할 수 없었다. 심지어 기뻐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나를 비롯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른바 '멘붕' 상태에 빠졌으리라. 감사하게도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고 있는 다수의 사역자를 통해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큰 틀로 보자면 하나님 나라와 대립하는 죄의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며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 는.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는 주제로 예배를 준비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대귀의 [나는]과 [응답하소서], [예수 하나님의 공의], 어노인팅(이지음)의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마커스의 [주의 나라 세우소서] 이렇게 여섯 곡으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자 했다. 당시의 나로서는 곡 선정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나같은 어린 신앙도 괴롭고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찬양사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오죽했으랴. 존재 이유에 대해서까지 고민하지 않았겠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갈구하지만, 현실의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는 것에 대한 성찰이 뒤따랐을 것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들의 비겁한 회피가 세월호란 참사를 정치적 공방으로 이전시켰기에, 세월호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정교분리라는 같잖은 이유로 불편해하는 기독교인이 적지 않다. 마커스 안에서도 그런 의견 충돌이 없지 않았으리라. 일단 마커스 인도자인 심종호 씨의 페이스북(세월호 후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카더라)으로 드러나는 기풍은 '침묵할 수 없다'인 듯하다. 세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마커스도 내부적으로 적잖은 진통을 겪었을 것 같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마커스 7집이고, 가사를 살펴보면 세월호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고 있다. '고스란히 접었다'고 했지만 교회라는 주제는 곡 간간이 보인다. 또한 믿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할지 그려지지 않으며 메시지가 다소 추상적이다. 물론 소개글과 생뚱맞은 주제라고 할 건 아니다. 우리를 통해 주의 사랑을 보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본다, 우리는 주의 교회이며 믿는 자를 통해 일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벗어나는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커스의 직전 앨범을 포함해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노래하는 앨범은 이미 많다. '세월호 사건 이후 드러난 수많은 죄악들을 직시했고, 멤버들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셔서 준비해온 1년의 과정을 접고 다시 준비한 것' 이란 소개글을 달았지만 각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그 고민의 깊이가 담겨있다고 보기엔 다소 의아하다. 러고보면 앞서 벌어진 헤프닝들이 딱히 오독한 사람들 탓만은 아닌 듯. 


어쩌면 나야말로 개인적인 바람을 마커스에게 너무 투영해 앨범의 의도를 오독한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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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으로 으쌰으쌰

생각 2015. 4. 9. 18:37


순수성을 확보하려는 건 내 선천적인 기질인 것 같다.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삶의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나에 대한 비판을 굳이 찾아 듣고, 남이 나를 좋아해줄 때 그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고, 싫어 죽겠는 사람도 장단점을 구분한다. '그 인간 나도 겁나 싫어하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나한테 이득이 되는 경우에도 이것저것 재고 따진다. 학교에서 계약기간이 끝나고 부서장님의 추천으로 다른 부서에 갈 때 연줄 잡고 가는거 잘못된 거 아닌지 많이 고민했다.결국 가긴 갔다 하지만 망했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중립적인 위치에서 나를 돌아보기 위해 잘잘못을 따질 때 나에게 보정 핸디캡을 준다. 때론 그것이 나에게 역차별이 되기도 할 정도로.


동기를 살펴보는 것도 정말 열심이다. 왜 그랬을까? 어떤 감정이었지? 그 애한테 무의식적으로 받은 느낌이 어땠지? 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때도 똑같이 반응했을까?


근데 요즘은 이 기질이 영 피곤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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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용서?

일상 2015. 3. 24. 21:13

 매우 좋지 않은 채로 끝나버린 이전 사무실 팀장과의 관계. 난 왜 그렇게 참고 참았던 걸까. 그러나 퇴사일, 그러니까 마지막 날엔 점심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결국 참치마요를 먹고 만다. 학생 500명을 학과별로 정리한 자료를 학생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라는 팀장 지시를 이미 학과별로 나뉜 자료기에 찾는데 무리가 없으므로 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6층짜리 건물이 떠나갈 정도로 나가라고 소리지르는 팀장을 뒤로 한 채 유유히 떠났다. 어디가서 자기 만날 일 없을 것 같냐며 눈을 부라리는 팀장을 보며 속으로 '제발 안 봤으면...' 싶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보니 그 소원은 팀장에게 더 필요했다. 왜냐면...


 내가 발령받기 전인 2월에 전임자가 A, B학생에게 지급될 25만원을 누락시켰고 내가 발령받은 3월에 학생들이 찾아왔으나 예산은 2월까지 집행 가능해서 정상적인 지급은 불가능한 상태. 윗선에 보고하니 못준다 하란다. 결국 두 학생은 우리 팀 예산 지급하는 정부부처에 민원을 넣었다. 돈없다, 못준다, 배째라 하다가 민원 후 '지금은 곤란하니 나중에 챙겨주겠다'만 반복하던 윗선과 A,B학생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던 난 사비로 A,B에게 총 50만원을 송금했다. 학생들이 나중에 지급받으면 나한테 돌려주기로 약속했고. 7월 회계감사를 준비하며 내 전임자가 25만원 횡령한 것이 드러나 회수하고 그 돈을 A에게 지급, A가 나에게 송금하여 A는 상황 종료. 그리고 올해 2월에 장학금 명목으로 50만원을 B에게 지급, 바로 회수하고 나에게 25만원을 보내려 했으나(나머지 25만원은 어쩔랬는지 모르겠다) 전후사정 다 아는 B는 사무실에게 "너흰 1년 후에나 주면서 뭘 바로 돌려달란거냐"고 버티기 시전. 전화 온 팀장은 반말 찍찍 하며 내 탓으로 돌렸다. '왜 사비를 줘서 이 사단을 만드냐, 나가서까지 힘들게 하냐, 니 잘못이니까 기다리고 있으라'며. 하하. "나 이제 ㅇㅇㅇ씨 아래사람 아니니 반말하지 마시고, ㅇㅇㅇㅇ(그 팀 예산 지급하는 정부부처)에 민원 넣을테니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 잘잘못 따져봅시다" 


 이때부터 태도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일단 회의를 잡았단다. 몇 시간 뒤 그 팀 부장교수 한 명이 자기 사비로 25만원 주겠다네. 누가 돈 때문에 이러나? 교수 사비 받을 이유 없으니 안 받겠다고 했다. 막무가내로 내 이전 급여통장에 입금했지만 다시 돌려보냈다. 내 후임은 제발 자기 좀 살려달라고, 민원 넣으면 감사 나올거고 거기 죽어나는 건 실무자들이라고, 본인이 다 잘못했다며 사정사정을 했다. 난 팀장이 사과하면 넘어가겠단 뉘앙스로 답했고, 잘 해석했는지 다음 날 구구절절한 변명이 담긴 팀장의 문자가 왔다. 당신이 ~해서 ~했고 ~했다, 어쨌든 미안하다, 는 내용의. 그게 사과라면 조현아 쪽지는 석고대죄다. 예산 지급하는 부처에서 민원 양식을 다운받았다. 


 팀 한해 예산에 비하면 푼돈이지만, 감사를 나가지 않을 수 없도록 민원 내용을 구성했다. 전임자 횡령이 걸려 있고 장학금을 허투로 지급한 사실도 있다. 소스는 충분하다. 증빙? 내 후임에겐 미안하지만 그분과 한 카톡대화로 가능하다. 덧붙이거나 부풀릴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 얘기하면 된다. 내가 잘못한 거? 사비지급이 잘한 짓은 아니지만,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예산을 쓴 것도 아니니 꿀릴 거 없다. INTP(MBTI 유형)의 복수는 순수악을 연상케 한다던가. [보통은 '복수심' '앙갚음'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냥 신경을 끄죠. 하지만 '복수'에까지 생각이 미친다면...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아요. 숨통이나 밥줄을 끊어 놔야죠. '복수'라고 마음을 먹으면 두고 보면서 상황과 계획을 정리하고 모아서 디데이를 정한 후 난도질을 해버립니다. 반박도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마지막으로 내 동기를 톺아봤다. 표면적으론 내 잘못 아니란 거 입증하겠다는 이유를 댔지만, 솔직한 진짜 동기는 내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드러났다. 그 팀장, 나 퇴사 전에도 괴롭혀서 내보낸 직원이 둘이나 있었다. 사람 미워한 값, 결코 저렴할 수 없단 거 알려주고 싶었다. 민원 땜에 고생 좀 하겠지만 나한테 한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이건 약과다. 누구 미워한 건 그 댓가를 치르겠단 의미 아닌가. 자기 기분따라 아랫사람 힘들게 해도 별일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둘 순 없다. 그런 사람이 세상 편하게 살도록 둬선 안될 일이다. 그렇게 사람 힘들게 만든 인간은 본인도 당해봐야 할 것 같았다. 팀이 1년 사업 후 사업평가 받고 그 평가에 따라 다음 예산이 결정되는데 마침 3-4월이 평가기간이다. 감사 떠서 주옥(빠르게 읽으시오)돼보란 거다. 아, 내가 아랫사람한테 왜 기분대로 하고 살았을까, 하고 후회하도록.


정리하면 첫째로 내 잘못 아니라는 거 판정받겠다는 자존심이고, 둘째로 그동안 팀장에게 쌓인 감정에 대한 복수심이다. 동기를 정리(이거 내 전공이다)하며 적지 않은 시간동안 고민했다. 내 후임에겐 약간 미안한 맘이 있지만 공사를 구분할 때 민원 넣으면 안 될 외부적 요인은 없다. 그러나 발목을 잡는 건 역시나 내부적 요인이었다. 둘째 동기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모를까, 복수적 동기를 인지하고 계획을 실행하기는 힘들었다. 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를 비롯해 용서에 관한 구절들이 떠올랐다. 며칠간 생각과 씨름했지만, 결국 멈추기로 결단했다. 용서할 때 풀려나는 자는 용서받은 자보다 용서한 자라던가. 민원을 강행했다간 후회하거나 내 가치관에 균열이 생길 것 같았다. 멈춰야만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사안에 대해 그 누구도 나를 설득하거나 요구해서 멈출도록 할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오롯이 내 판단이자, 내면의 소리에 반응한 결과이다.


 나의 나름 치열한 고민과 관계없이 그 팀장은 '민원 넣는다더만 안넣었나? 별일 없네ㅋㅋ'하고 생각할 거다. 이게 가장 마지막까지 망설이게 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집중한 결과이니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 근데 왜 이런 기록을 남기느냐? 변명하자면, 아마 마지막 응어리의 배출이 아닐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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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P의 복수

펌글 2015. 3. 9. 10:01

무관심이나 무시하는 것으로 감정 싸움을 피하던 INTP 유형들이 그 단계를 넘어서면 그야말로 이성을 놓습니다. 언제나 초연해 보이던 그 들이 그 단계로 들어서는 순간, 잠들어 있던 '순수악' '파괴본능'을 쏟아내게 되는거죠. 보통은 '복수심' '앙갚음'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냥 신경을 끄죠. 하지만 '복수'에까지 생각이 미친다면...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아요. 숨통이나 밥줄을 끊어 놔야죠. '복수'라고 마음을 먹으면 두고 보면서 상황과 계획을 정리하고 모아서 디데이를 정한 후 난도질을 해버립니다. 반박도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이성의 매력은 존경심과 비례한다. 연애가 끝나는 시점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바닥 났을때.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르다보니 모범생이란 이미지가 씌워졌을 뿐.


학생A가 학생B와 다툰일을 눈물을 흘리며 얘기하자 곧 주위의 학생들이 몰려와 A를 위로하며 B를 헐뜯기 시작했다. 그 폭풍같은 시간이 정리될 즈음 한 INTP학생이 얘기했다. "그건 네 생각이잖아. B얘기도 들어봐야지." (INTP forum)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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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P (1)

펌글 2015. 2. 17. 13:53

다음은 이 INTP가 (완벽하고 타협없는 관계에서, 만약 있다면 말이지) 원하는 것들이다:

(특정한 순서는 없다)


1. 자아 성찰과 자아 분석이 가능한 사람. 종종 INTP는 자신만이 관계에서 "성장하는", 관계성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을 발견한다. 이는 그 INTP를 변화하고 파트너를 위해 타협하는 쪽으로 만든다. 많은 이들은 진정한 자아 성찰 능력이 없다. 그(상대방)는 언제나 옳다. 그렇기에 INTP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알아내기 위해서 자기자신과 관계를 검토하는 데 삶을 소비하게 된다. 따라서 INTP는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상대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가 변하기만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INTP는 영혼의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를 막기 위해, INTP는 그들과 같이 관계를 검토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

 

2. 정신적 지원 (INTP 친구들에게 이 세계는 버거운 곳이다)

 

3. 동등함 (INTP는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지배에 의해 부서져버린다)

 

4. 감정을 해치기 어려운 사람 (INTP는 살랑살랑 기분을 맞추는 요령이 없을 뿐 아니라, 절친한 파트너와 잔인하리만큼 정직해지고 싶어한다. 그들은 재미로 모욕해도 되고 그 답례로 웃어버리거나 바로 되갚아주는 그런 사람을 바란다.)

 

5.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 (가벼운 관찰자에게 관계 속의 INTP는 예상할 수 없는 존재이다. 가령, 그들은 한 때는 고독을 원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는 섹스를 원한다. 상대는 이런 모습을 좀처럼 그들의 "사랑"에 대한 전형적인 관념과 타협시키지 못한다)

 

6. 그들의 독특한 사랑 표현 방식을 받아들이는 사람. 무지무지 감상적이고 속절없이 낭만적인 헛소리일수도 있고 열정적인 육체적 표현일수도 있으며, 그저 손을 대는 것이나 단순한 시선일수도 있다. INTP 방식은 무척 알아차리기 힘들어서, 눈을 깜빡이면 놓쳐버리고 만다. 여성은 라디오가 없는 방에서의 느린 춤이나, 하루가 끝난 후 TV앞에서의 조용한 포옹, 혹은 다른 이상하고 제멋대로인 INTP의 표현보다는 꽃이나 말을 원하고는 한다. 이것은 5번과 이어진다.

 

7. 공간!!! 보지 못했을 경우를 위해 다시 말하지. 공간!! INTP는 지식을 추구할 자유시간을 원하며, 1. 방해받는 것 2. 그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낸다고 파트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일컬어지는 것 등을 견디지 못한다. INTP는 잠시 사라졌다가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상대에게 INTP 파트너가 오직 그들을 섹스를 위해서만 원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틀린 말이지만, INTP가 아닌 사람이 5번과 6번을 견딜 수 없다면, 그들은 그렇게 믿게만 된다.

 

8. 안락함. 2번과 동반된다. 특히나 INTP에게, 이 세상은 젠장맞다. 그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참을성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2번과 8번이 없다면 결국 그 관계가 죽거나, INTP가 굉장히 실제적으로 죽게 될 것이다. 파트너가 충분한 2번과 8번을 제공할 때 INTP는 삶에서 극적일 만큼의 자기 희생과, 책임감, 참을성을 보일 수 있다.

 

9. 지성인. 토론에서 자기 입장을 고수할 수 있는 사람. "너는 항상 니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INTP가 배우자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마지막 말이다. INTP는 논쟁을 원한다! 지적인 자극을 원한다고! 그가 집에서 이걸 얻을 수 없다면, 7번은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해진다- 배우자가 7번을 다룰 수 없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만약 배우자가 9번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INTP는 배우자와 긴 긴 시간동안 무척 행복하게 함께 있을 것이다.

 

10. 함께 배울 사람. 9번과 동반된다 - 배움과 지적 자극에 흥미가 있는 사람. INTP는 함께 공부하고 인생의 미스테리와 모험을 함께 즐길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들의 마이너한 흥미요소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심지어 함께해주거나, 새로운 것들을 소개해주는 사람 말이다.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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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29

 만약 진주성동교회 수련회 당시 예배 실황 녹화를 했었고 내 찬양인도를 돌려볼 수 있다면 이미 나의 손발은 실종상태일 거다. 7년 반이 지났으니. 그렇다고 현재는 일취월장하여 '좀 하는' 인도자가 된 건 아니고, 타고난 게으름에 힘입어 최소한의 법칙으로 인도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그럭저럭 마친 첫 찬양인도 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자신감을 제법 얻었다. 돌발상황에서 찬양인도자가 필요할 때 기꺼이 자원할 정도는 되었다. 가요를 '세상 초등 음악' 정도로 취급하고 mp3엔 어노인팅, 디사이플스, 예수전도단 등의 앨범만 가득 넣고 즐겨 들었다. 특히나 어노인팅 5집 예배를 인도했던 강명식 아저씨에 꽂혀 애드립 흉내도 내고 멘트도 종종 따라하고. '젊은 사람들도 지칠 때가 있죠?'

 다음 찬양인도 기회는 IVF에서 찾아왔다. 2006-1학기 담당자를 세우는 회의(챕터)에서 찬양담당, 문서담당 자리가 남았고 세워질 사람은 내 동기 친구와 나만 남은 상황. 나름 책 좀 읽는 척하며 문서 담당 자리에 관심을 보였던 터라 두 자리를 놓고 고민을 좀 했다. 동기 친구와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둘이 밖에서 작당을 하다가 결국 내가 찬양, 친구가 문서를 맡기로 했다. 들어와서 결과를 얘기하니 선배들이 길고 지루한 회의가 끝났기에!박수쳐 줬지만, 간사님은 다 모인 자리에서 너네 둘이 따로 결정하고 와서 통보하듯 결론내리는게 공동체적이냐고 일침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뾰로통해졌지만 지금은 백번 이해되는 간사님 마음.


 학기가 시작되고 악기 두 개, 그것도 뿅뿅 소리나고 중고로 십만원이면 살만한 건반과 엠프연결 안 되는 기타로만 큰모임 찬양을 했다. 당시 우리 캠퍼스 지부는 두 개였고, 기타도 두 개였지만 뿅뿅 소리나는, 중고로 십만원이면 살만한 건반은 하나 뿐이라 그마저도 없이 예배할 때도 있었다. 기타 넥과 줄의 간격이 0.5cm 정도 되는 파란기타로 매주 섬겨준 선배님께 감사를.

 2006년. 그때부터 난 고등부 서기를 맡으며 8년째 고등부에 발을 담그고 있다. 한창 기타에 심취해 있던 시기였고, 마침 고등부 찬양팀엔 기타가 없었다! 4월 경, 고등부 강도사님과 상의 후 고등부 찬양팀 기타 반주를 해도 좋다고 허락받았다. 당시 고등부에서 찬양인도 하던 학생은 현재 나와 오후 찬양예배 인도를 돌아가며 맡고 있는 동생이다. 여러모로 재능 있고 리더십도 뛰어난 아이라, 난 찬양팀 안에서 기타 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2006년을 보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엔 고등부 찬양팀 교사를 지원하고 담당하게 된다. 2007년 고등부 찬양인도를 했던 학생은 현재 청년부 찬양팀이며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다. 착하고 순한 아이라 나랑 짝짜꿍하며 즐겁게 한 해를 보냈다. 연습 마치면 같이 순대 떡볶이나 족발 먹으러 다니고, 내일 찬양을 위해 발성 연습한답시고 오락실 노래방도 다녔다. 같이 놀아나는 덴 일가견이 있었지만 찬양팀 경험이 전무한, 근본(?) 없는 찬양팀 교사였기에 뭘 가르치거나 지도해주는 덴 애로사항이 많았다.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2007년은 지나갔다.

 2008년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 에피소드 하나. 2007년 여름 즈음에 나도 어느 찬양팀이든 소속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기도도 많이 했다. 지금이야 어째어째 팀장까지 2년째 맡고 있지만, 당시의 대청부 찬양팀은 내가 지원하기엔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팀 안에 팽배(해 보이는)한 끼리끼리 문화 속에 편입되지 못하리란 두렴이 있었던 듯하다. 9월 경,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동아리 방 근처에서 내가 재학중인 캠퍼스의 찬양팀을 모집한다는 홍보문을 보았다.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어 지원했고, 첫 섬김은 학교 근처 대형교회의 주일 저녁 헌신예배가 되었다. 당시 IVF 대표 형에게 이 같은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그냥 넘어가 주길 바랐던 내 속내와는 다르게 짧지 않은 시간동안 혼났다. 아니, 혼났다기보다는 제법 대들었던 것 같다. '너 혼자 결정하면 공동체는 무슨 의미냐' '공동체가 저한테 그만한 소속감을 주지 못했잖아요'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만큼 풀리지 않는 얘기다. 현재는 바뀐 입장으로 내가 팀원들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30분 가량 결론 없는 얘기를 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두어 번 섬겼는데 그 팀의 리더와 주류는 찬양 잘 하기로 소문난 Y모 선교단체였고, 다음 헌신예배 일정들이 주로 본교회 청년예배와 겹쳐 한번 두번 빠지며 서서히 안 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2008년 고등부 찬양팀 교사도 여차여차하여 결국 내가 연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찬양인도에 대해 도통 아는 것이 없어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내가 찬양인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자 했다. 언제나 그렇듯 파랑새는 집 안에 있는 법. 대청부 찬양팀장을 찾아가 상황설명을 하고 팀원이 된다. 당시는 찬양인도를 배워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들어갔다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찬양팀에 앞서 말했던 2006년, 2007년 고등부 찬양인도를 했던 동생들이 나보다 한 주 일찍 들어가 있었기에 이제 찬양팀을 해도 아웃사이더는 안 되겠구나, 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찬양팀 지원을 가능하게 했던 듯하다. 4주의 수습기간을 보내고 격주로 기타와 방송실을 역임하며 찬양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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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필립 얀시의 책 이름을 베꼈다.


10년 전, 고1 가을, 다시 교회를 나가기로 마음먹었던 그 때. 고등부 예배의 찬양은 나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찬송가나 어린이용 복음성가만 알았던 난 ccm이란 장르 자체를 처음 접했었기에. 지각하는 고질적 습성 때문에 종종 예배시간에 늦어 놓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찬양시간을 참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고등부 찬양시간은 지금 고등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 시크한 표정으로 앉은 애들 반, 마지못해 리듬에 맞춰 박수치는 애들 반이었다.

생전 처음 참석한 2003년 여름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찬양은 '신날 수'도 있고, 방방 뛰거나 손을 든 채로 부를 수도 있는 것임을 알았고, 금새 잊어버렸지만 6개월마다 한번씩은 그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찬양에 대한 기쁨을 적립해 나갔다.

흔한 고등부의 아웃사이더로 2년 반을  보내고 대청부로 진입. 대청부는 찬양 스케일 자체가 고등부와는 비교가 안 되게 컸다. 쟁쟁한 세션들에 빵빵한 싱어들, 특출난 인도자까지. 찬양팀 근처에 가본 적이나 가볼 생각도 없었지만, 당시엔 은근 찬양팀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러던 2006년 1월,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스텝으로 참석 중, 다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2005년 부산경남 IVF수련회에서 알게 된 진주 성동교회의 경상대IVF  출신 친구였다. 교회 중고등부에서 위탁수련회 등록일을 놓치는 바람에 자체 수련회를 하게 되었는데, 찬양 인도자가 없단다. 급하게 찬양 인도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어라... 난 찬양인도는커녕 찬양팀 문턱에도 가까이 다가가 본 적이 없는 놈인데. 하지만 당시 난 이제 대학 1학년을 마친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고, 더군다나 수련회 중이라 은혜가 충만한 상황이었다. 믿음으로 안될 것 없다고 외치는, 다소 무모한 녀석이었다. (그런 놈, 조심하라. 할줄 아는 건 없으면서 다 하겠다고 덤빈다)

지금은 세월의 길목에 반쯤 흘려버린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명제를 제법 신뢰했던 덕분인지,  '믿음으로'란 구호 속에 숨겨진 혈기 때문이었는지 이틀 정도 고민하는 시늉 하다가 OK 응답을 했다. 이내 서른 곡에 달하는 이틀분 찬양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IVF 동기 두 명이 함께 섬기기로 했다. 드디어 수련회 날인 주일 저녁, 기대감과 떨림이 적절히 섞인 심정을 가지고 우리는 부산에서 진주로 이동, 성동교회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베이스, 일렉, 드럼 연주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친구가 아는 드러머를 불렀는데, 걔가 베이스와 일렉까지 데려왔단다. 그야말로 풀 세션. 아, 세컨은 없었나. 그런데 인도자는 찬양팀 경험이 전무한 뉴비다. 그날 저녁, 중고등부 아이들과 함께한 찬양은 과연 어땠을까?

아무 재능도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들어 쓰셨고, 조촐한 규모의 수련회였지만 이곳에 예수 이름으로 모인 우리의 열정은 진주를 달굴 정도로 뜨거웠다. 그렇다. 나의 부족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였다.
는 꿈...

이제 씨만 뿌리면 될 것 같았다. 다 갈아 엎었으니까.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는 민망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을 완벽한 밭갈이었다. 박자를 놓쳐 그냥 밀고 나가버리면서 세션이 내 박자를 따라오게 만들기도 했다. 열댓 곡을 불렀는데, 후렴이나 앞으로 돌릴 줄 몰라 딱 한 번씩만 불렀고, 한 30분만에 끝난 것 같다. 분위기 타고 즐거워지려고 하면 뚝. 다시 빠른 곡 들어가고 분위기 예열될 만하면 또 뚝. "성령의 불타는 교회가 어디죠?" "성동교회!" "잘 안들립니다. 크게 대답해 주세요. 성령의 불타는 교회가 어디죠?" "성동교회!!!!!!!!!""우리 불타는 열정으로 찬양합시다!" "와~~!!!!" 빠라 빠빠 빰빠라라 빠밤~ 한번 부르고 끝. 이렇게 흘러갔다. 아이들의 얼굴엔 의아함을 지나 약한 짜증이 서리고 있을 때즘, 조용한 곡으로 넘어갔고 여기서부터는 무난했다. 삑사리 난 거 빼고.

찬양이 끝나고 나서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특출나게 잘할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거든.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렇게 못하고 쪽팔릴 줄 알았으면 안한다고 할 걸. 당시엔 이런 단어 없었지만, 그야말로 멘붕.

은혜스런 단어 제거하고 잔인하게 얘기하자. 인도자가 병맛이면 세션은 개빡돈다. 찬양이 끝나고 말씀 시작할 때 찬양팀은 잠시 다른 방에 모여서 피드백을 가졌다. 드럼 치는 친구는 동갑이었는데, 성격도 좋고 마음도 넓었다. 일렉 주자는 한살 어린 동생이었고, 별 말 없었다(화난 상태란 거다). 베이스도 칠 줄 알고, 당시 성악과 입학 예정이었다. 베이스는 당시 중2였나... 전형적인 AB형에 건반 빼곤 모든 악기를 깔짝댈 수 있는 능력자. 사고하는 게 좀 애늙은이 느낌. 애들이 빡쳐서 불만을 표현해야 정상인데 그닥 그렇지 않았다. 내일 집회를 준비하며 문제점을 고찰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데 힘을 모았다.

그 다음날부터는 레크레이션도 섞어 무난하게 인도하며 수련회를 잘 마무리했지.
수련회를 마치고 나서는 교회 후원으로 부페에서 거하게 먹으며 마무리.!

당시엔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난 찬양팀에 발목잡힐 운명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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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글.

 

"태초에 하나님나라가 있었다."

난 이 이야기로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놀라운 계획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보다는 성서에 기록된 바대로 "하나님나라"가 있었다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은 그 자체로써 "하나님나라"였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통치가 완전해진 곳이었다. 즉,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하나님뜻대로 돌아가던 곳이었다는 말이다.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때 하나님은 그 "에덴동산". 즉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나라"를 보존하시고자 에덴과 하와를 그곳에서 추방하였다. 어떤 맥락에서 보자면 "하나님나라"는 더이상 인간의 세계 밖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여전히 개입하지 않으시지만 하나님뜻대로 돌아가진 않는 세계가 지속된다. 이를 "죄에 빠진 세계"라고도 지칭할 수 있고 "세상나라"라고 지칭할 수도 있다. 어쨌던 세계는 죄에 푹 빠졌다.

그 이후로 "세상나라"는 모든 인류에게 불합리한 통치를 실현시킨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소급된다. 모든 피조물은ㅡ왕이던 노예던, 인간이던 한낱 잡초이던ㅡ세상나라의 완고한 체제속에 고통을 받는다.

이 "세상나라"속에 침투한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으니 그것을 우리는 아주 단순한 언어로 지칭한다. 바로 "복음"이라고 말이다. 즉 우리가 추방당했던, 그리고 우리의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님나라"가 우리 속으로 침투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리고 성령안에서 이 "하나님나라"의 현재를 직시한다. 즉 세상의 다스림과는 전혀 다른, 아니 세상의 다스림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게 되었는가? 한번 고민해보자. 세상나라의 체제가 하나님의 개입. 즉 예수그리스도의 개입을 차단시켰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제로 승화시키고는 부활을 통해서 세상나라의 체제가 거짓된 체제임을 밝혀냈다. 그리고는 거짓된 체제보다 더 상위에서 작동하는 체제가 있음을, 자신은 그 체제로부터 보냄받았음을 증명했다.

그리고는 그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불러모아 일종의 에클레시아, 엄밀히 말하자면 세상 나라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경험하고 실현시키는 무리들을 만들어낸다. 그렇다, 우리는 이 연장선상 속에 있다.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예수안에서, 그리고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발견한다. 세상체제의 통치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말이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에게는 당연히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명확해진다. 먼저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완전해지는 시대(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둘째는 거짓된 세상체제의 모습을 폭로하고 대척점에 서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세상체제를 격퇴시킬 하나님이 다스리는 체제를 조금씩 실현시켜 가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복음이 재해석될때 단순히 사역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직업인-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임무가 주어진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동일한 임무를 각자 다른 삶의 자리 위에서 지령으로써 받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하나의 사람으로써 살아낸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동일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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