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필립 얀시의 책 이름을 베꼈다.
10년 전, 고1 가을, 다시 교회를 나가기로 마음먹었던 그 때. 고등부 예배의 찬양은 나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찬송가나 어린이용 복음성가만 알았던 난 ccm이란 장르 자체를 처음 접했었기에. 지각하는 고질적 습성 때문에 종종 예배시간에 늦어 놓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찬양시간을 참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고등부 찬양시간은 지금 고등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 시크한 표정으로 앉은 애들 반, 마지못해 리듬에 맞춰 박수치는 애들 반이었다.
생전 처음 참석한 2003년 여름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찬양은 '신날 수'도 있고, 방방 뛰거나 손을 든 채로 부를 수도 있는 것임을 알았고, 금새 잊어버렸지만 6개월마다 한번씩은 그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찬양에 대한 기쁨을 적립해 나갔다.
흔한 고등부의 아웃사이더로 2년 반을 보내고 대청부로 진입. 대청부는 찬양 스케일 자체가 고등부와는 비교가 안 되게 컸다. 쟁쟁한 세션들에 빵빵한 싱어들, 특출난 인도자까지. 찬양팀 근처에 가본 적이나 가볼 생각도 없었지만, 당시엔 은근 찬양팀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러던 2006년 1월,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스텝으로 참석 중, 다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2005년 부산경남 IVF수련회에서 알게 된 진주 성동교회의 경상대IVF 출신 친구였다. 교회 중고등부에서 위탁수련회 등록일을 놓치는 바람에 자체 수련회를 하게 되었는데, 찬양 인도자가 없단다. 급하게 찬양 인도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어라... 난 찬양인도는커녕 찬양팀 문턱에도 가까이 다가가 본 적이 없는 놈인데. 하지만 당시 난 이제 대학 1학년을 마친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고, 더군다나 수련회 중이라 은혜가 충만한 상황이었다. 믿음으로 안될 것 없다고 외치는, 다소 무모한 녀석이었다. (그런 놈, 조심하라. 할줄 아는 건 없으면서 다 하겠다고 덤빈다)
지금은 세월의 길목에 반쯤 흘려버린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명제를 제법 신뢰했던 덕분인지, '믿음으로'란 구호 속에 숨겨진 혈기 때문이었는지 이틀 정도 고민하는 시늉 하다가 OK 응답을 했다. 이내 서른 곡에 달하는 이틀분 찬양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IVF 동기 두 명이 함께 섬기기로 했다. 드디어 수련회 날인 주일 저녁, 기대감과 떨림이 적절히 섞인 심정을 가지고 우리는 부산에서 진주로 이동, 성동교회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베이스, 일렉, 드럼 연주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친구가 아는 드러머를 불렀는데, 걔가 베이스와 일렉까지 데려왔단다. 그야말로 풀 세션. 아, 세컨은 없었나. 그런데 인도자는 찬양팀 경험이 전무한 뉴비다. 그날 저녁, 중고등부 아이들과 함께한 찬양은 과연 어땠을까?
아무 재능도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들어 쓰셨고, 조촐한 규모의 수련회였지만 이곳에 예수 이름으로 모인 우리의 열정은 진주를 달굴 정도로 뜨거웠다. 그렇다. 나의 부족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였다.
는 꿈...
이제 씨만 뿌리면 될 것 같았다. 다 갈아 엎었으니까.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는 민망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을 완벽한 밭갈이었다. 박자를 놓쳐 그냥 밀고 나가버리면서 세션이 내 박자를 따라오게 만들기도 했다. 열댓 곡을 불렀는데, 후렴이나 앞으로 돌릴 줄 몰라 딱 한 번씩만 불렀고, 한 30분만에 끝난 것 같다. 분위기 타고 즐거워지려고 하면 뚝. 다시 빠른 곡 들어가고 분위기 예열될 만하면 또 뚝. "성령의 불타는 교회가 어디죠?" "성동교회!" "잘 안들립니다. 크게 대답해 주세요. 성령의 불타는 교회가 어디죠?" "성동교회!!!!!!!!!""우리 불타는 열정으로 찬양합시다!" "와~~!!!!" 빠라 빠빠 빰빠라라 빠밤~ 한번 부르고 끝. 이렇게 흘러갔다. 아이들의 얼굴엔 의아함을 지나 약한 짜증이 서리고 있을 때즘, 조용한 곡으로 넘어갔고 여기서부터는 무난했다. 삑사리 난 거 빼고.
찬양이 끝나고 나서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특출나게 잘할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거든.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렇게 못하고 쪽팔릴 줄 알았으면 안한다고 할 걸. 당시엔 이런 단어 없었지만, 그야말로 멘붕.
은혜스런 단어 제거하고 잔인하게 얘기하자. 인도자가 병맛이면 세션은 개빡돈다. 찬양이 끝나고 말씀 시작할 때 찬양팀은 잠시 다른 방에 모여서 피드백을 가졌다. 드럼 치는 친구는 동갑이었는데, 성격도 좋고 마음도 넓었다. 일렉 주자는 한살 어린 동생이었고, 별 말 없었다(화난 상태란 거다). 베이스도 칠 줄 알고, 당시 성악과 입학 예정이었다. 베이스는 당시 중2였나... 전형적인 AB형에 건반 빼곤 모든 악기를 깔짝댈 수 있는 능력자. 사고하는 게 좀 애늙은이 느낌. 애들이 빡쳐서 불만을 표현해야 정상인데 그닥 그렇지 않았다. 내일 집회를 준비하며 문제점을 고찰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데 힘을 모았다.
그 다음날부터는 레크레이션도 섞어 무난하게 인도하며 수련회를 잘 마무리했지.
수련회를 마치고 나서는 교회 후원으로 부페에서 거하게 먹으며 마무리.!
당시엔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난 찬양팀에 발목잡힐 운명이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