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네가 누군진 모른다. 다만 최소한 나랑 일면식은 있고, 나의 동역자이며, 아마도 이 글을 볼 것이란 것뿐.

 

지난 10월 28일, 학과 친구랑 같이 땅에서 지갑을 하나 주웠지. 우리학교 체대생의 지갑이었고 안에는 신분증과 카드, 현금 9만원 가량이 들어 있었어. 난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생각으로 그날 학교 자유게시판에 지갑 찾아가란 글을 썼고, 한참 연락이 오지 않아 11월 15일 한 번 더 글을 썼지. 그 글들은 자유게시판에 아직 남아 있어. 여전히 연락은 오지 않았고. 체육학과 사무실에 맡기면 알아서 찾아줬겠지만, 아마 선행을 한 사람으로서의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것이겠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정도 듣고 싶다는 그런.

 

여튼 12월 2일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고, 오늘 오후 1시에 룸에 들렀다가 내 사물함에 둔 그 지갑에서 현금만 없어졌단 사실을 알게 됐어. 연락이 안 오니 신경도 안 쓰고 있다가, 향원이가 없어졌다고 말해줘서 알았던 거지. 그 순간 깜짝 놀랐어. 사물함에 그 지갑을 그냥 둔건 설마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우리 안에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으니까.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더구나.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너무 허탈하다' '지갑 주인에겐 뭐라고 하지' 등등. 그때 룸에서 내 잘못이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에겐 정말 화가 났지. 신뢰저버림을 당한 나에게 그 말은 상처가 됐거든. 다시 수업을 가서 곰곰이 생각했지. 정말 내 잘못이었나.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다, 였어. 지갑을 빨리 찾아주지 않고 룸에 방치해 이런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벌어지도록 원인을 제공한 약간의 책임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 때문'으로 결론내릴 순 없지. 이건 분명한 범법 행위야. 낯 뜨거운 이야기다만,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서 여성의 잘못이 아니듯 말이다. 나 때문이라는 쓸데없는 죄책감으로 잘잘못에 물 타기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지는 어차피 알 수 없으니, 왜 그랬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아마도 그 지갑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을 거라고 가정할게.

첫째로, 돈이 탐났겠지. 필요했다던가. 9만원이라면 학생에겐 제법 큰 돈 아니냐. 난 이제 용돈을 벌어 쓰는 입장이니, 그 액수다 더 크게 와 닿는다. 내가 무려 22시간동안 일을 해야 버는 돈이 90420원이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탐났었다. 눈 딱 감고 꿀꺽하면 22시간을 쉴 수 있다는 얘기니까.

둘째로, 네가 아는 사람이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의 돈이라는 것이 다소 남아있는 망설임을 제거하는 이유가 됐을 것이다. 죄책감이 없지 않았겠지만 혹 '에이, 어차피 잃어버린 건데' 란 생각을 하진 않았니? 단호히 말하겠다만 그 생각은 철저히 틀렸다. 나는 내 통장에서 이미 9만원을 출금해서 그 지갑에 넣었고, 내일 디피엠이 마친 후 주민등록증에 있는 주소로 간단한 편지와 함께 택배 보낼 예정이니까. 나는 내 결정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 없는 선택이라고 믿는다. 너에게 핑계거리를 주지 않기 위함이기도 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자체가 참 가슴 아픈 일이고, 공동체성에 큰 타격을 입히는 일이기도 하다. 피해자인 나는 물질적 피해 못지않게 정신적 충격도 크고. 차라리 외부인이 침입해서 훔쳐갔다고 생각한다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작년 여름이었나... 룸에 있던 푼돈을 모으는 돼지저금통을 도둑맞은 일도 있었지. 그땐 저금통이 룸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에 외부인의 소행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렸지만, 이번에도 그러기엔 지갑이 너무 구석진 곳에 있었어. 의심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에 더욱 충격이 크다.

 

혹자는 그냥 묻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이런 일이 표면으로 떠오르면 공동체에 불신이 생기지 않냐고. 하지만 이미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제법 있고, 숨겨지지 않을 일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덮는 것은 너에게 장기적으로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거고. 공동체에 덕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곪는 상처를 숨기면 결국 도려내는 아픔을 겪지 않겠니. 어떻게든 사건을 덮으려는 삼일교회를 떠올리니 더더욱 침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잘못을 꾸짖지 않음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들은 심심찮게 접하는 거잖아.

 

이번 일로 네가 큰 부담을 가졌으면 좋겠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만큼 큰 사건으로 남기를 바란다. 나에게 다가와 고백해 준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은 또 없겠지. 둘만 아는 비밀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함은 물론이고.

 

 

밤이 늦었구나.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한다.

이 편지를 읽은 우리 공동체원 역시 함께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이 사건으로 인해 끊임없는 부담감으로 너에게 복 주시기를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다른 사건에 대한 예방접종으로 선용해 주시기를...



20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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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활동한 동아리의 싸이월드 클럽에 2010년 12월에 썼던 글이다. 5년이 넘게 흘러 잊고 있었는데... 엊그제 당사자가 용기를 내서 자기가 한 것이라 고백했다.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했을까. 5년이란 세월동안 맘을 파고드는 가시가 되어 제발 가라고 아주 가라고 애써도 계속해서 그 아이를 괴롭혔을 테다.


이익보다 신념과 양심을 강조하며 살아온 내 삶의 방식에 의문이 들어가는 타이밍에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해 주시는구나. 5년 전 뿌린 씨앗은 열매를 맺었고,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감사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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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29

 만약 진주성동교회 수련회 당시 예배 실황 녹화를 했었고 내 찬양인도를 돌려볼 수 있다면 이미 나의 손발은 실종상태일 거다. 7년 반이 지났으니. 그렇다고 현재는 일취월장하여 '좀 하는' 인도자가 된 건 아니고, 타고난 게으름에 힘입어 최소한의 법칙으로 인도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그럭저럭 마친 첫 찬양인도 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자신감을 제법 얻었다. 돌발상황에서 찬양인도자가 필요할 때 기꺼이 자원할 정도는 되었다. 가요를 '세상 초등 음악' 정도로 취급하고 mp3엔 어노인팅, 디사이플스, 예수전도단 등의 앨범만 가득 넣고 즐겨 들었다. 특히나 어노인팅 5집 예배를 인도했던 강명식 아저씨에 꽂혀 애드립 흉내도 내고 멘트도 종종 따라하고. '젊은 사람들도 지칠 때가 있죠?'

 다음 찬양인도 기회는 IVF에서 찾아왔다. 2006-1학기 담당자를 세우는 회의(챕터)에서 찬양담당, 문서담당 자리가 남았고 세워질 사람은 내 동기 친구와 나만 남은 상황. 나름 책 좀 읽는 척하며 문서 담당 자리에 관심을 보였던 터라 두 자리를 놓고 고민을 좀 했다. 동기 친구와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둘이 밖에서 작당을 하다가 결국 내가 찬양, 친구가 문서를 맡기로 했다. 들어와서 결과를 얘기하니 선배들이 길고 지루한 회의가 끝났기에!박수쳐 줬지만, 간사님은 다 모인 자리에서 너네 둘이 따로 결정하고 와서 통보하듯 결론내리는게 공동체적이냐고 일침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뾰로통해졌지만 지금은 백번 이해되는 간사님 마음.


 학기가 시작되고 악기 두 개, 그것도 뿅뿅 소리나고 중고로 십만원이면 살만한 건반과 엠프연결 안 되는 기타로만 큰모임 찬양을 했다. 당시 우리 캠퍼스 지부는 두 개였고, 기타도 두 개였지만 뿅뿅 소리나는, 중고로 십만원이면 살만한 건반은 하나 뿐이라 그마저도 없이 예배할 때도 있었다. 기타 넥과 줄의 간격이 0.5cm 정도 되는 파란기타로 매주 섬겨준 선배님께 감사를.

 2006년. 그때부터 난 고등부 서기를 맡으며 8년째 고등부에 발을 담그고 있다. 한창 기타에 심취해 있던 시기였고, 마침 고등부 찬양팀엔 기타가 없었다! 4월 경, 고등부 강도사님과 상의 후 고등부 찬양팀 기타 반주를 해도 좋다고 허락받았다. 당시 고등부에서 찬양인도 하던 학생은 현재 나와 오후 찬양예배 인도를 돌아가며 맡고 있는 동생이다. 여러모로 재능 있고 리더십도 뛰어난 아이라, 난 찬양팀 안에서 기타 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2006년을 보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엔 고등부 찬양팀 교사를 지원하고 담당하게 된다. 2007년 고등부 찬양인도를 했던 학생은 현재 청년부 찬양팀이며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다. 착하고 순한 아이라 나랑 짝짜꿍하며 즐겁게 한 해를 보냈다. 연습 마치면 같이 순대 떡볶이나 족발 먹으러 다니고, 내일 찬양을 위해 발성 연습한답시고 오락실 노래방도 다녔다. 같이 놀아나는 덴 일가견이 있었지만 찬양팀 경험이 전무한, 근본(?) 없는 찬양팀 교사였기에 뭘 가르치거나 지도해주는 덴 애로사항이 많았다.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2007년은 지나갔다.

 2008년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 에피소드 하나. 2007년 여름 즈음에 나도 어느 찬양팀이든 소속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기도도 많이 했다. 지금이야 어째어째 팀장까지 2년째 맡고 있지만, 당시의 대청부 찬양팀은 내가 지원하기엔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팀 안에 팽배(해 보이는)한 끼리끼리 문화 속에 편입되지 못하리란 두렴이 있었던 듯하다. 9월 경,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동아리 방 근처에서 내가 재학중인 캠퍼스의 찬양팀을 모집한다는 홍보문을 보았다.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어 지원했고, 첫 섬김은 학교 근처 대형교회의 주일 저녁 헌신예배가 되었다. 당시 IVF 대표 형에게 이 같은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그냥 넘어가 주길 바랐던 내 속내와는 다르게 짧지 않은 시간동안 혼났다. 아니, 혼났다기보다는 제법 대들었던 것 같다. '너 혼자 결정하면 공동체는 무슨 의미냐' '공동체가 저한테 그만한 소속감을 주지 못했잖아요'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만큼 풀리지 않는 얘기다. 현재는 바뀐 입장으로 내가 팀원들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30분 가량 결론 없는 얘기를 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두어 번 섬겼는데 그 팀의 리더와 주류는 찬양 잘 하기로 소문난 Y모 선교단체였고, 다음 헌신예배 일정들이 주로 본교회 청년예배와 겹쳐 한번 두번 빠지며 서서히 안 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2008년 고등부 찬양팀 교사도 여차여차하여 결국 내가 연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찬양인도에 대해 도통 아는 것이 없어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내가 찬양인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자 했다. 언제나 그렇듯 파랑새는 집 안에 있는 법. 대청부 찬양팀장을 찾아가 상황설명을 하고 팀원이 된다. 당시는 찬양인도를 배워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들어갔다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찬양팀에 앞서 말했던 2006년, 2007년 고등부 찬양인도를 했던 동생들이 나보다 한 주 일찍 들어가 있었기에 이제 찬양팀을 해도 아웃사이더는 안 되겠구나, 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찬양팀 지원을 가능하게 했던 듯하다. 4주의 수습기간을 보내고 격주로 기타와 방송실을 역임하며 찬양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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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필립 얀시의 책 이름을 베꼈다.


10년 전, 고1 가을, 다시 교회를 나가기로 마음먹었던 그 때. 고등부 예배의 찬양은 나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찬송가나 어린이용 복음성가만 알았던 난 ccm이란 장르 자체를 처음 접했었기에. 지각하는 고질적 습성 때문에 종종 예배시간에 늦어 놓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찬양시간을 참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고등부 찬양시간은 지금 고등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 시크한 표정으로 앉은 애들 반, 마지못해 리듬에 맞춰 박수치는 애들 반이었다.

생전 처음 참석한 2003년 여름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찬양은 '신날 수'도 있고, 방방 뛰거나 손을 든 채로 부를 수도 있는 것임을 알았고, 금새 잊어버렸지만 6개월마다 한번씩은 그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찬양에 대한 기쁨을 적립해 나갔다.

흔한 고등부의 아웃사이더로 2년 반을  보내고 대청부로 진입. 대청부는 찬양 스케일 자체가 고등부와는 비교가 안 되게 컸다. 쟁쟁한 세션들에 빵빵한 싱어들, 특출난 인도자까지. 찬양팀 근처에 가본 적이나 가볼 생각도 없었지만, 당시엔 은근 찬양팀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러던 2006년 1월,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스텝으로 참석 중, 다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2005년 부산경남 IVF수련회에서 알게 된 진주 성동교회의 경상대IVF  출신 친구였다. 교회 중고등부에서 위탁수련회 등록일을 놓치는 바람에 자체 수련회를 하게 되었는데, 찬양 인도자가 없단다. 급하게 찬양 인도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어라... 난 찬양인도는커녕 찬양팀 문턱에도 가까이 다가가 본 적이 없는 놈인데. 하지만 당시 난 이제 대학 1학년을 마친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고, 더군다나 수련회 중이라 은혜가 충만한 상황이었다. 믿음으로 안될 것 없다고 외치는, 다소 무모한 녀석이었다. (그런 놈, 조심하라. 할줄 아는 건 없으면서 다 하겠다고 덤빈다)

지금은 세월의 길목에 반쯤 흘려버린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명제를 제법 신뢰했던 덕분인지,  '믿음으로'란 구호 속에 숨겨진 혈기 때문이었는지 이틀 정도 고민하는 시늉 하다가 OK 응답을 했다. 이내 서른 곡에 달하는 이틀분 찬양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IVF 동기 두 명이 함께 섬기기로 했다. 드디어 수련회 날인 주일 저녁, 기대감과 떨림이 적절히 섞인 심정을 가지고 우리는 부산에서 진주로 이동, 성동교회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베이스, 일렉, 드럼 연주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친구가 아는 드러머를 불렀는데, 걔가 베이스와 일렉까지 데려왔단다. 그야말로 풀 세션. 아, 세컨은 없었나. 그런데 인도자는 찬양팀 경험이 전무한 뉴비다. 그날 저녁, 중고등부 아이들과 함께한 찬양은 과연 어땠을까?

아무 재능도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들어 쓰셨고, 조촐한 규모의 수련회였지만 이곳에 예수 이름으로 모인 우리의 열정은 진주를 달굴 정도로 뜨거웠다. 그렇다. 나의 부족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기록된 말씀 그대로였다.
는 꿈...

이제 씨만 뿌리면 될 것 같았다. 다 갈아 엎었으니까.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는 민망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을 완벽한 밭갈이었다. 박자를 놓쳐 그냥 밀고 나가버리면서 세션이 내 박자를 따라오게 만들기도 했다. 열댓 곡을 불렀는데, 후렴이나 앞으로 돌릴 줄 몰라 딱 한 번씩만 불렀고, 한 30분만에 끝난 것 같다. 분위기 타고 즐거워지려고 하면 뚝. 다시 빠른 곡 들어가고 분위기 예열될 만하면 또 뚝. "성령의 불타는 교회가 어디죠?" "성동교회!" "잘 안들립니다. 크게 대답해 주세요. 성령의 불타는 교회가 어디죠?" "성동교회!!!!!!!!!""우리 불타는 열정으로 찬양합시다!" "와~~!!!!" 빠라 빠빠 빰빠라라 빠밤~ 한번 부르고 끝. 이렇게 흘러갔다. 아이들의 얼굴엔 의아함을 지나 약한 짜증이 서리고 있을 때즘, 조용한 곡으로 넘어갔고 여기서부터는 무난했다. 삑사리 난 거 빼고.

찬양이 끝나고 나서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특출나게 잘할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거든.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렇게 못하고 쪽팔릴 줄 알았으면 안한다고 할 걸. 당시엔 이런 단어 없었지만, 그야말로 멘붕.

은혜스런 단어 제거하고 잔인하게 얘기하자. 인도자가 병맛이면 세션은 개빡돈다. 찬양이 끝나고 말씀 시작할 때 찬양팀은 잠시 다른 방에 모여서 피드백을 가졌다. 드럼 치는 친구는 동갑이었는데, 성격도 좋고 마음도 넓었다. 일렉 주자는 한살 어린 동생이었고, 별 말 없었다(화난 상태란 거다). 베이스도 칠 줄 알고, 당시 성악과 입학 예정이었다. 베이스는 당시 중2였나... 전형적인 AB형에 건반 빼곤 모든 악기를 깔짝댈 수 있는 능력자. 사고하는 게 좀 애늙은이 느낌. 애들이 빡쳐서 불만을 표현해야 정상인데 그닥 그렇지 않았다. 내일 집회를 준비하며 문제점을 고찰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데 힘을 모았다.

그 다음날부터는 레크레이션도 섞어 무난하게 인도하며 수련회를 잘 마무리했지.
수련회를 마치고 나서는 교회 후원으로 부페에서 거하게 먹으며 마무리.!

당시엔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난 찬양팀에 발목잡힐 운명이었던 것이었다.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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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팀 음주 스캔들

추억 2015. 2. 17. 12:54

 2012년 봄, 청년부 찬양팀끼리 술마시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 선배가 찬양팀장인 나에게 얘기해 줄땐 그러려니 했는데, 타지에 있는 친한 형이 '너거 술처먹으러 다닌다며?ㅋㅋㅋ' 라길래 뒷이야기가 돌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론화되지 않고 떠도는 소문이었기에 어떻게 해명할까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에 글을 질러버리는 것이 제일 적절하다 판단했다. 수면 위로 띄우는 것이 긁어부스럼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진위판단불가적 망발성농후기담으로 인한 모든 불명예를 우리 찬양팀이 덮어썼는데 그걸 감내하며 잠잠해지길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1. 사람이 모인 곳을 사회라 합니다. 따라서 학교, 직장, 교회 모두 사회이고, 그 곳에서의 활동을 사회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회는 다양한 일이 벌어집니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였기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3.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좋은 일, 나쁜 일, 즐거운 일, 슬픈 일 등 다른 모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은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4. 안타깝지만 교회 안에서도 나쁜 일과 슬픈 일은 생겨납니다. 갈등도 발생합니다.

5. 갈등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뒷 이야기로 도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 이면의 부작용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이해는 갑니다.

6. 최근 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찬양팀끼리 술을 마시러 다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7. 두어 달 전 이 이야기를 찬양팀장인 저에게 전해 준 선배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같은 이야기를 타지에 있는 선배에게 또 들었습니다.

8. 지난 주일 몇몇 선배들에게 물어봤는데, 종합하여 판단해보니 이미 소문이 돈 것은 몇 달 전이었고,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은 듯했습니다. 물론 처음 들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9. 헛소문은 그냥 덮어두는게 낫지 않을까, 긁어 부스럼 아니겠나, 하는 우려도 있지만, 오해는 풀고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10. 두 가지만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11. 첫째로, 저는 크리스찬의 음주에 관대한 편입니다. 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12. 신명기 14:26에서는 포도주와 독주를 가족과 함께 즐기라고 권합니다. (그것도 십일조를 가지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돼지와 같겠지만, 전제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술을 즐기라고 주신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딤전4:4 

13.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먹보에 술꾼'으로 불렸고, 잔치집에서는 취한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더 만들어 주셨습니다. 음주가 죄로 정죄되려면, 그 논리를 전개할 때 예수님은 걸림돌이 됩니다. 

14. 그렇다고 음주를 장려하려는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금주문화는 한국의 술문화와 음주의 역기능에 비춰볼 때 긍정적인 면이 큽니다. 귀한 전통이라 생각합니다.

15. 허나 그 귀한 전통이 한계효용에 달하는 지점은 그 전통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될 때입니다. "넌 왜 우리 규칙을 지키지 않지?" 이럴 경우 그 전통은 없느니만 못할 수 있습니다.

16. 제가 좋아하는 문구로 첫 얘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 

17. 둘째로, 찬양팀은 음주를 즐기러 간 적이 없습니다.

18. 토요일 연습이 마치면 10시가 넘습니다. 야식 생각 날 시간입니다. 가끔씩 선배들의 후원으로, 혹은 자체 회비로 치킨, 피자 등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19. 그럴 때마다 오늘 힘들었다, 한잔하러 가자, 시원한 주님 만나러 가자, 는 식의 농담을 종종 하는데, 여기가 오해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함께 술을 마신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20. 얼핏 보면 첫째(11)와 둘째(17)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진 않습니다. 두 명제를 붙여놓으면 [죄라고 생각치 않지만, 즐기지 않았다] 고 정리됩니다.

21. 그것은 교회의 전통과 문화, 구성원들의 정서를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릴 권리를 양보하는 것,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4장에 근거하여.)

22. 그러나 찬양팀원들의 사적인 생활까지 통제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개인에 대해 단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압력은 일종의 폭력에 다름 아니며, 저는 그런 전체주의식 발상을 굉장히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23. 저를 포함한 찬양팀원 중 누군가가 사적으로 가진 자리를 보고 "쟤 술 마시네?" 하는 어떤 사람의 말이 "찬양팀이 술 먹는다더라"는 식으로 재생산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문이 돌고 돌면  그렇게 왜곡될 수 있겠지요.

24.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입니다. 저 역시 이런 부분으로는 팀원들을 터치하지 않습니다. 친구와의, 가족과의, 친밀한 사이의 관계마저 종교인이라는 명목으로 재단하려 한다면, 사람을 살리는 은혜가 한순간에 숨통을 조이는 율법으로 탈바꿈하는 대단한 비극일 것입니다. 

25. 이상입니다.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내부의 암적 존재로 기능하는 풍문과 오해를 풀고자 긴 글을 썼습니다.

26.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맛 좋은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땐 물로 부산의 명물 생탁보다 맛있는 막걸리를 만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27. 함께 존중과 배려가 어우러진 청년부 공동체 만들어 나가요.^^

 

 

 

 

그럭저럭 공감을 얻었으나 전도사 사역나간 선배가 '이런 글은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논지의 지적을 해서 키보드배틀을 좀 벌렸다. 어쨌든 이후 찬양팀 음주에 대한 헛소문은 사라진 듯.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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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7 

1.  확실히 난 지도자 스타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케어하고 챙기는 것도 안 된다.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 기질을 거스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과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2. 찬양팀장과 찬양인도를 하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당. 난 내 능력과 인격에 비해 상당히 고평가받고 있다. 이건 겸손도 교만도 아닌 건조한 서술이다. 가령, 내가 8점의 사람이라면, 앞에 서는 이미지 덕에 10점의 사람처럼 비춰진단 얘기다.


3. 덕분에 청년부 회장 공천을 받았다. 외향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꼼꼼하지도 않기에 총무나 회계 할 스타일은 아니고, 부회장은 자매가 꾸준히 해왔고, 서기 하기엔 연차가 많고. 공천을 받는다면 회장을 받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었다. 흔히 하듯 굳이 막판까지 공천을 숨겨야 할 어떤 이유도 동의되지 않는다. 침묵이라면 모를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숨기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기만이다. 


4. 그래서, 할거냐.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한 그룹의 대표자 역할을 해내기엔 너무 우유부단하고, 카리스마가 딸린다. 이런 결점은 찬양팀에서 해왔듯 합의를 끌어내고 모두의 동의를 받는 민주적 운영을 할 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만, 의사표명에 적극적이지 않은 우리 공동체 기질상 마이너스 요인이다. 


5.  보통 리더들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탁월하지 않으면 온유함으로 그 부분을 보완하는 것 같다. 끌든 품든 한 묶음이 되어 간다고 말하면 얼추 맞을까. 나는 둘 다 아니다. 역량이 부족하다. 차라리 특유의 직관으로 날카롭게 통찰(이것도 썩 뛰어나진 않다만)하는 역할이 적합하다. 


6. IVF와는 달리 청년부는 교회 소속이다. 따라서 대외적인 활동이 많고, '이건 아닌데...' 싶은 일을 지시받을 경우가 걱정된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일을 꾹 참고 하는 것까진 용납된다만, 그걸 남에게까지 권해야 하는 상황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 나는 비판적인 성향의 사람이고, 그 성향은 내가 소속된 교회라고 해서 예외이지도 않다. 근래엔 조직 생활을 하며 이 성향이 많이 희석되었고, 가치와 현실의 괴리에도 침묵하는 비겁함을 내면화시켜가고 있다만,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다.


7. 나는 총회 때 이런 견해를 밝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사람들이 나를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싸이 다이어리에 공개로 썼던 글. 이땐 그 잔을 피했다. 하지만 1년 후 결국 들이켰고, 이 글을 쓰던 당시 예상했던 모든 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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