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팀 음주 스캔들

추억 2015. 2. 17. 12:54

 2012년 봄, 청년부 찬양팀끼리 술마시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 선배가 찬양팀장인 나에게 얘기해 줄땐 그러려니 했는데, 타지에 있는 친한 형이 '너거 술처먹으러 다닌다며?ㅋㅋㅋ' 라길래 뒷이야기가 돌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론화되지 않고 떠도는 소문이었기에 어떻게 해명할까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에 글을 질러버리는 것이 제일 적절하다 판단했다. 수면 위로 띄우는 것이 긁어부스럼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진위판단불가적 망발성농후기담으로 인한 모든 불명예를 우리 찬양팀이 덮어썼는데 그걸 감내하며 잠잠해지길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1. 사람이 모인 곳을 사회라 합니다. 따라서 학교, 직장, 교회 모두 사회이고, 그 곳에서의 활동을 사회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회는 다양한 일이 벌어집니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였기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3.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좋은 일, 나쁜 일, 즐거운 일, 슬픈 일 등 다른 모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은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4. 안타깝지만 교회 안에서도 나쁜 일과 슬픈 일은 생겨납니다. 갈등도 발생합니다.

5. 갈등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뒷 이야기로 도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 이면의 부작용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이해는 갑니다.

6. 최근 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찬양팀끼리 술을 마시러 다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7. 두어 달 전 이 이야기를 찬양팀장인 저에게 전해 준 선배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같은 이야기를 타지에 있는 선배에게 또 들었습니다.

8. 지난 주일 몇몇 선배들에게 물어봤는데, 종합하여 판단해보니 이미 소문이 돈 것은 몇 달 전이었고,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은 듯했습니다. 물론 처음 들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9. 헛소문은 그냥 덮어두는게 낫지 않을까, 긁어 부스럼 아니겠나, 하는 우려도 있지만, 오해는 풀고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10. 두 가지만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11. 첫째로, 저는 크리스찬의 음주에 관대한 편입니다. 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12. 신명기 14:26에서는 포도주와 독주를 가족과 함께 즐기라고 권합니다. (그것도 십일조를 가지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돼지와 같겠지만, 전제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술을 즐기라고 주신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딤전4:4 

13.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먹보에 술꾼'으로 불렸고, 잔치집에서는 취한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더 만들어 주셨습니다. 음주가 죄로 정죄되려면, 그 논리를 전개할 때 예수님은 걸림돌이 됩니다. 

14. 그렇다고 음주를 장려하려는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금주문화는 한국의 술문화와 음주의 역기능에 비춰볼 때 긍정적인 면이 큽니다. 귀한 전통이라 생각합니다.

15. 허나 그 귀한 전통이 한계효용에 달하는 지점은 그 전통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될 때입니다. "넌 왜 우리 규칙을 지키지 않지?" 이럴 경우 그 전통은 없느니만 못할 수 있습니다.

16. 제가 좋아하는 문구로 첫 얘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 

17. 둘째로, 찬양팀은 음주를 즐기러 간 적이 없습니다.

18. 토요일 연습이 마치면 10시가 넘습니다. 야식 생각 날 시간입니다. 가끔씩 선배들의 후원으로, 혹은 자체 회비로 치킨, 피자 등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19. 그럴 때마다 오늘 힘들었다, 한잔하러 가자, 시원한 주님 만나러 가자, 는 식의 농담을 종종 하는데, 여기가 오해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함께 술을 마신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20. 얼핏 보면 첫째(11)와 둘째(17)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진 않습니다. 두 명제를 붙여놓으면 [죄라고 생각치 않지만, 즐기지 않았다] 고 정리됩니다.

21. 그것은 교회의 전통과 문화, 구성원들의 정서를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릴 권리를 양보하는 것,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4장에 근거하여.)

22. 그러나 찬양팀원들의 사적인 생활까지 통제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개인에 대해 단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압력은 일종의 폭력에 다름 아니며, 저는 그런 전체주의식 발상을 굉장히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23. 저를 포함한 찬양팀원 중 누군가가 사적으로 가진 자리를 보고 "쟤 술 마시네?" 하는 어떤 사람의 말이 "찬양팀이 술 먹는다더라"는 식으로 재생산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문이 돌고 돌면  그렇게 왜곡될 수 있겠지요.

24.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입니다. 저 역시 이런 부분으로는 팀원들을 터치하지 않습니다. 친구와의, 가족과의, 친밀한 사이의 관계마저 종교인이라는 명목으로 재단하려 한다면, 사람을 살리는 은혜가 한순간에 숨통을 조이는 율법으로 탈바꿈하는 대단한 비극일 것입니다. 

25. 이상입니다.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내부의 암적 존재로 기능하는 풍문과 오해를 풀고자 긴 글을 썼습니다.

26.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맛 좋은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땐 물로 부산의 명물 생탁보다 맛있는 막걸리를 만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27. 함께 존중과 배려가 어우러진 청년부 공동체 만들어 나가요.^^

 

 

 

 

그럭저럭 공감을 얻었으나 전도사 사역나간 선배가 '이런 글은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논지의 지적을 해서 키보드배틀을 좀 벌렸다. 어쨌든 이후 찬양팀 음주에 대한 헛소문은 사라진 듯.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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