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더십 찾아가기
대부분이 겪는 부모와 교사 리더십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20년을 보내고, 교회와 대학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만나기 시작했다. 교사들이 반을 맡았던 중고등부와는 달리 청년부는 형 누나들이 리더를 맡고 있었다. 임원 등도 형 누나들이었고 예배 준비와 진행, 수련회까지 모두 ‘우리’의 손으로 진행했다. 대학에서 접한 동아리(IVF)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IVF를 통해 접한 성격유형검사(MBTI)와 에니어그램은 나를 지배하지도, 지배받지도 않으며 관습에 의한 구속을 참지 못하는 인습타파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래서였을까, 탈권위적인 공동체 방식은 매우 신선했고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모든 곳에는 직분이 있다. 특히 남자들은 나이를 따진다. 이것이 모임의 보편적 분위기이니 탈권위적인 내 성향은 윗사람들과 필연적으로 마찰이 생겼다. 잘 지내던 IVF 대표 형과 틀어졌고 교회 찬양팀장과의 불화 등 주로 지도자 리더십을 가진 형들과의 마찰이 잦았다. 그렇게 깨어진 관계도 적지 않다. 다행인 것은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 덕분인지 대부분의 동생들과는 잘 지냈다. 그마저도 최근엔 지켜야할 선이 있는 형이란 이미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청년부 공동체에 속한 지 2년이 지나며 나도 공동체의 리더십이 되었다. 조장도 맡았고,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찬양팀장도 맡았다.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싫어했던 그 모습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으며, 내가 추구하는 리더십도 완벽하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가 나 스스로 만들어질 수 없는 노릇이다. 공동체 구성원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감사하게도 독단적이었던 내 모습에 공동체의 향기가 베인 것을 보고는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2009년, IVF 대표로 세워졌다. 당시 정치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한창 집착하던 시기라 그것들을 공동체와 공유하려 애썼다. 당연히 처절한 실패로 이어졌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한 것이 뭐가 나쁘겠냐마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두거나 받아 들여질만한 방법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일방적 리더십을 싫어했음에도 나에게 권한이 주어지니 똑같이 했던 것이다.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2012년에는 교회 청년부 찬양팀장으로 세워졌다. 매우 민주적인 팀 운영을 지향했다. 권위적인 어투나 단어는 지양했고, 행사나 결정할 사항이 있으면 팀원들에게 사전 동의를 구한 후 진행했다. 임기에 대한 자체내 평가는 내가 했으니 긍정적이다. 청년부(임원 등)와 찬양팀의 묘한 긴장관계를 완화시켰고 의사결정을 함께 했다는 것이 좋게 평가할 부분.
작년에 낙선했던 회장 후보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피할 수 있다면 누구든 피하길 원한다는, 그래서 작년에 성공적으로 피했던 그 잔이 다시 돌아온다. 결국 받아 마시게 된다면 다소 답답할 수 있는 리더십이지만 6~70여 명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유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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