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5.06.30 과부의 두 렙돈
  2. 2015.04.20 마커스 7집과 세월호 헤프닝
  3. 2015.04.09 중간으로 으쌰으쌰
  4. 2014.12.23 보험가입 권유를 받으며
  5. 2014.12.05 리그베다 위키
  6. 2014.10.20 마지막 집세
  7. 2014.09.01 다니엘서 묵상
  8. 2014.08.31 블로그 시작

과부의 두 렙돈

생각 2015. 6. 30. 11:17
 
  1.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2.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3.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성전에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다(42). 그것을 보고 예수님은 이 과부가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한다(43).


많이 접하는 본문이다. 보잘 것 없는 과부의 헌금을 넉넉히 받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나오는 설교도 많다. 이런 류의 설교는 흔히 드릴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금액이 아닌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그런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우리의 것을 내어드려야 한다는 식으로 귀결된다. 과연 이 본문은 그러한 의도로 쓰여졌을까?



성경사전에서 렙돈의 정의를 찾아봤다. 

렙돈 : 그리스의 최소 동전 단위. 호리로 불리기도 한다(눅 12:59). 중량 1.7g, 앗사리온의 8분의 1, 고드란트의 2분의 1에 해당된다(막 12:24). 예수께서는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칭찬하셨다(눅 21:1-4).


지금으로 치면 오백원짜리 두개를 넣었다고 보면 적절하겠다. 동전을 넣는 순간 헌금함 바닥에 짤랑 하는 소리가 났을 것이고, 주위의 시선을 끌기도 했을 것이다.



41-44절만 본다면 예수님이 과부를 칭찬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해당 구절의 앞뒤를 살펴보자.

36-40절에서 예수님은 서기관을 질책한다. 몇 가지 근거를 드는데, 그 중 하나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것이다.


13:1-2에서는 성전을 나가시며 성전의 화려함에 심취한 제자들에게 이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성전이 화려하되,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는가? 과부를 착취하는 서기관을 비판(38)하다가 헌금하는 과부를 주목했으며(43-44), 서기관이 있고 과부가 헌금을 낸 그 장소가 무너질 것이라 얘기한다(13:2).


많이들 오해하는데, 사실 예수님은 과부를 칭찬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냈다고 했을 뿐이다. 앞뒤 문맥이 없다면 칭찬으로 받아들여졌겠지만, '과부를 착취하면서 기도는 근엄하게 하는' 서기관을 질책(38v)한 후 한 이야기라면 의미는 달라진다. 그것은 자연히 서기관 질책의 연장이 된다. 이 과부는 그 질책의 명확한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저것 봐라. 저들은 생계가 곤란한 과부의 생활비마저 받아가고 있다'


나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헌금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단, 이 본문은 그런 맥락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부의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헌금을 받아내는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질책이었고, 그 불의가 이뤄지는 성전에 대한 사망 선고였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21장도 앞뒤 문맥이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서기관 질책 - 과부 언급 - 성전 무너짐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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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말로 기억한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마커스 7집을 보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마커스 7집 소개글에 세월호 언급을 보고 분노한 듯.(이유는 뒤에서 설명) 뜻하지 않게 페이스북에서 제법 이슈가 되었고, 찬양앨범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네임드 사역자들도 댓글을 달았다. 한 찬양사역자의 설명으로 글쓴이가 마커스 앨범 소개글의 오독을 인정했고, 뒤늦게 마커스 멤버 한 분이 차분하며 겸손한 댓글을 써서 압도적인 좋아요를 받으며 훈훈하게 끝나가는 분위기까지 확인했다. 현재 그 글은 글쓴이가 본의 아니게 논란이 커진 것 같다며 삭제한 상태.오독한 게 드러나서 부끄러웠겠지


 추후 이런 기사도 나왔다(페이스북에서 마커스 심종호 씨가 오해라고 탄식하며 링크하여 보게 되었다). 이 기사를 쓴 기자 겸 목사는 위 페이스북 글쓴이를 언급하며 그분과 같은 오독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사의 논지에 동의하고 문제의식에도 공감하는데, 오해로 점철된 도입부가 좀 아쉽다.나 따위는 가볍게 씹어먹는 필력이란 건 넘어가자 이쯤되면 마커스의 소개글에 원죄가 있다는 주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문단이 오해하기 좋게 구성되었다. 여담인데 소개글이 문장력은 좋으나 문단 간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성했거나 초안에서 세부적인 수정을 많이 한 것 같다.


문제가 된 마커스 앨범 소개글 일부를 살펴보면... (전문은 여기서 확인)


(전략)

그와 함께 2014년 4월, 이 나라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인 ‘세월호’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이 땅의 수많은 죄악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고, 더불어 이 세상의 모습을 비추는 듯한 우리 ‘교회’들의 상황을 마주하며 혼돈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가 이 시간 속에서 이 상황을 마주하며 과연 무엇을 말하고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시대적인 상황을 보며 ‘교회’를 주제로 하여 오랫동안 앨범을 기획하며 준비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가,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이상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멤버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마음이 있어서 1년 가까이 준비해온 과정을 고스란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후략)


정리하자면 마커스는 앨범준비를 1년 가까이 하는 중->세월호 사건 일어나서->준비한 1년의 과정을 접고->다른 방향으로 앨범을 준비했음 을 말하려 했는데, 몇몇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아파하며 1년 가까이 앨범준비를 했으나->멤버들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셔서->접고 다른 주제로 앨범을 냈다 로 이해한 것. 세월호 사건 11개월 후 발매된 앨범인데? 어제 예배하면 오늘 앨범이 뚝딱! 마커스 글만 읽어보면 진짜 그런 의미로 이해되는건 함정


논란의 시작이었던 페이스북 글에 달린 댓글들은 세월호 이후 마커스 내부에서 실제로 치열한 고민이 있었음을 얘기한다. 당연한 얘기다. 마커스 앨범엔 삶의 예배를 강조한 노래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2집의 [부르신 곳에서]. 나 역시 내가 속한 선교단체에서 삶과 상황이 없는 진공 상태의 예배는 존재할 수 없다고 배웠다. 


당시를 떠올려보자. 너무도 괴로웠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어노인팅 9집) 전능하시고 신실한 분이라는 고백이 이 상황에서 가당키나 한 건가? 아니, 정말 하나님은 선하신 분인 건가? 300여 명이 서서히 죽어가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셨단 말인가. 이 순간 부르는 찬송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중구난방으로 머리를 떠돌았다. 곧 다가올 부활절을 차마 기뻐할 수 없었다. 심지어 기뻐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나를 비롯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른바 '멘붕' 상태에 빠졌으리라. 감사하게도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맺고 있는 다수의 사역자를 통해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큰 틀로 보자면 하나님 나라와 대립하는 죄의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며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 는.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는 주제로 예배를 준비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대귀의 [나는]과 [응답하소서], [예수 하나님의 공의], 어노인팅(이지음)의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마커스의 [주의 나라 세우소서] 이렇게 여섯 곡으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자 했다. 당시의 나로서는 곡 선정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나같은 어린 신앙도 괴롭고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찬양사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오죽했으랴. 존재 이유에 대해서까지 고민하지 않았겠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갈구하지만, 현실의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는 것에 대한 성찰이 뒤따랐을 것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들의 비겁한 회피가 세월호란 참사를 정치적 공방으로 이전시켰기에, 세월호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정교분리라는 같잖은 이유로 불편해하는 기독교인이 적지 않다. 마커스 안에서도 그런 의견 충돌이 없지 않았으리라. 일단 마커스 인도자인 심종호 씨의 페이스북(세월호 후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카더라)으로 드러나는 기풍은 '침묵할 수 없다'인 듯하다. 세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마커스도 내부적으로 적잖은 진통을 겪었을 것 같다. 


그렇게 나온 앨범이 마커스 7집이고, 가사를 살펴보면 세월호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고 있다. '고스란히 접었다'고 했지만 교회라는 주제는 곡 간간이 보인다. 또한 믿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할지 그려지지 않으며 메시지가 다소 추상적이다. 물론 소개글과 생뚱맞은 주제라고 할 건 아니다. 우리를 통해 주의 사랑을 보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본다, 우리는 주의 교회이며 믿는 자를 통해 일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벗어나는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커스의 직전 앨범을 포함해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노래하는 앨범은 이미 많다. '세월호 사건 이후 드러난 수많은 죄악들을 직시했고, 멤버들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셔서 준비해온 1년의 과정을 접고 다시 준비한 것' 이란 소개글을 달았지만 각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그 고민의 깊이가 담겨있다고 보기엔 다소 의아하다. 러고보면 앞서 벌어진 헤프닝들이 딱히 오독한 사람들 탓만은 아닌 듯. 


어쩌면 나야말로 개인적인 바람을 마커스에게 너무 투영해 앨범의 의도를 오독한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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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으로 으쌰으쌰

생각 2015. 4. 9. 18:37


순수성을 확보하려는 건 내 선천적인 기질인 것 같다.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삶의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나에 대한 비판을 굳이 찾아 듣고, 남이 나를 좋아해줄 때 그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고, 싫어 죽겠는 사람도 장단점을 구분한다. '그 인간 나도 겁나 싫어하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나한테 이득이 되는 경우에도 이것저것 재고 따진다. 학교에서 계약기간이 끝나고 부서장님의 추천으로 다른 부서에 갈 때 연줄 잡고 가는거 잘못된 거 아닌지 많이 고민했다.결국 가긴 갔다 하지만 망했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중립적인 위치에서 나를 돌아보기 위해 잘잘못을 따질 때 나에게 보정 핸디캡을 준다. 때론 그것이 나에게 역차별이 되기도 할 정도로.


동기를 살펴보는 것도 정말 열심이다. 왜 그랬을까? 어떤 감정이었지? 그 애한테 무의식적으로 받은 느낌이 어땠지? 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때도 똑같이 반응했을까?


근데 요즘은 이 기질이 영 피곤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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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형 중에 보험 쪽에서 일하는 분이 있다. 얼굴은 옛날부터 알았는데 말은 최근에 텄고. 도움되는 이야기 해줄 게 있다고 한번 보자며 연락이 왔다. 보험이야기겠거니... 했지만 마땅히 거절할 말이 없어서 약속을 잡았다.

 

퇴근 후 만나서 커피 한잔을 놓고 설명을 시작하는데, 처음엔 듣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갈수록 현대인에게 보험 가입이 필수라는 내용으로 귀결되는 깔대기식 내용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그렇다고 굳이 감춘 것도 아니다. '그만 하셨으면 좋겠네요' 라는 어필은 노골적으로 했다. 그 형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지만 애써 모른 척 하며 두 시간에 가까운 설명을 기어이 끝냈다. 





국민연금과 노후, 재해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놓았고 그걸 토대로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패드를 꺼내서 퀄리티 높은 PPT까지 보여줬다. 아마 본사 차원에서 만든 자료 같았고 이 형은 그 자료로 설명하는 법을 교육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짜증이 치솟은 나에게는 아 저건 또 뭐야.. 였을 뿐. 


그 형은 몇 번 강조했다. 보험은 사람을 돕는 직업이라 생각한다고. 고객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그리고 현재 설명하는 것은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꼭 보험을 들 필요는 없지만 가입하려면 도와주겠다고. 아, 예... 무한 긍정의 힘이 발동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꿀같은 퇴근 후 자유시간을 두 시간이나 빼앗긴 나에게 그건 변명이 못 된다. 어차피 본인은 영업 중인 것이고 나를 통해 실적을 올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부정하진 못할 거다.



나는 내 인맥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직은 도무지 못할 것 같다. 나와 관계맺고 있는 사람을 수익의 수단으로 본다는 것은 날 자괴감에 빠지게 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 그 형도 그랬으리라. 그런 딜레마를 결국엔 스스로를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승화시켰고, 그래서 그것을 그토록 강조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형의 논지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내가 거부하며 벗어나려 하는 헤게모니인 물질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었다. 돈을 안 모으면 비참하게 살게 되리란 주장을 계속해서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란 극단적이고 불쾌한 가정도 했다. 오늘의 행복은 미래를 위해 접어두라는 주장은 이미 많다. 그러나 행복은, 내가 겪은 바로는 학습되는 것 같다. 누적되어 쌓여가는 것으로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 더 행복할 수 있다.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서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하는 건 불안감을 더는 것이지, 행복과는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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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베다 위키

생각 2014. 12. 5. 13:21

약 한달간 리그베다에 빠져 살았다. 아, 너무 재밌어...


그러다가 우리 찬양팀 정보도 개그틱하게 써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처음 작성을 시작했는데, 이용자들에 의해 필요없는 문서 취급 받아서 삭제돼 버렸다. 워낙에 개신교는 다양하게 욕먹을 짓을 하는 종교이니, 내 글 역시 교회 홍보로 취급되어 불필요한 키배도 벌렸다. 교회 까는 거 젤 좋아하는 인간 순위권에 들어갈 나도 밖에 나가면 그냥 교회랑 같이 욕먹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같은 편이에요 다행히 블로그에 백업해둬서 자료는 안 날렸고. 리그베다에는 못 올려도 그 형식으로 내 블로그에만 올려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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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집세

생각 2014. 10. 20. 19:03


산하칼럼 [마지막 집세]를 읽고


 이른 봄철의 날씨가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한다던가. 다가오던 봄이 주춤하던 무렵, 그 날씨보다 마음을 싸늘하게 만든 뉴스가 있었다. 세 모녀가 자신들이 세 들어 살던 방의 주인에게 월세와 죄송하단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번개탄을 피웠단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탓이다.


 글쓴이는 PD로서 일과 관련해 낯선 이들의 주목받지 못한 죽음과 유서를 접해본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글쓴이에게 세 모녀의 죽음은 일반인들이 뉴스로 접하는 것보다 더욱 생생하게 와 닿았을 것이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짧은 유서로 추측할 수 있는 죽음 전의 상황들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타인의 죽음 앞에서 자연히 숙연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며칠 전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에 일부 주민들이 집값 하락을 걱정하더라는 뉴스를 보고는... 정말이지 왜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는지 몸소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집 주인과 세 모녀의 관계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죄송하다는 말이 반복되는 걸로 봐서 모질지 못한 집주인이었을 테고, 그 인간적인 마음에 어떻게든 그 마음의 부담을 덜고 싶었던 세입자였을 것이다. 집주인은 혹여나 집세의 부담이 그 가냘픈 목숨줄에 닿였을까 하여 며칠을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여기서 글쓴이는 애도를 표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간 문제제기를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 또는 맹점, 다시 말해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세상의 저편으로 떠나가는 사람들 외에, 가해자가 명백하다고 할 정도인 사건들과 그 가해자들의 인간이길 포기한 행동들을 짚어낸다. 사람다운 사람들은 스러져가고 상처받는데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은 배불러 가고 그 배를 북삼아 두들기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세상인 것인가? 하고. 


 99% 이상의 사람들이 공감할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불법’의 딱지를 받은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펼쳐질 이야기로 넘어간다. ‘사람’인 저자는 초점을 법이 아닌 사람에게로 맞춘다. 마치 샤일록 같은 네 사정이야 어쨌든 내 돈은 내놓으라는 탐욕스런 이들의 세상이 펼쳐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 모녀를 안타깝게 여기는 인간적인 마음을,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사람에게도 베풀어 달라는 것 같다. 글쓴이의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약간은 비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큰 이익을 보장하는 세상인 것 같다. 그것은 자연히 더 큰 이익을 추구하면 비인간적인 것이 용납되어지는 세상으로 연결된다. 대안은 모르겠다. 그저 내 마음을 정비한다. 나를 풍요롭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것들이 인간됨 영역의 장벽을 두드릴 날이 곧 다가올 텐데 얼마나 버티고 견딜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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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묵상

생각 2014. 9. 1. 11:26


* 큐티 할 때마다 업데이트 할 예정.


9월부터 새 큐티책으로 시작한다. 마음 잡고 열심히 해보리라 다짐.



9.1(월) 단1:1-9


남유다는 여호야김 통치 3년만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엘리트급 소년을 불러모아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쳤고, 그들의 이름도 바벨론식으로 바꾸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창씨개명일테다. 뿐만 아니라 이 엘리트 소년들에게 왕의 포도주와 진미를 먹게 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의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취하는 식으로 이스라엘 혈통의 씨를 말리고, 혼혈을 탄생시킨다(사마리아인). 그에 반해 남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은 통합 정책을 펼쳤고, 정복한 남유다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려면 남유다 출신이면서 친바벨론적인 인사가 나서 남유다 백성들을 회유시키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때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 등의 젊은 엘리트를 불러모아 바벨론의 언어와 문화와 가치를 전수하고 바벨론화 시키는 것이 그 첫 단추로서 오늘 본문에 등장한다.


실시간으로 봤던 2013년 성서한국 주강사 김회권 교수의 설교가 떠올랐다. 바벨론이 주는 산해진미와 포도주를 먹는다면? 바벨론 그렇게 나쁘지 않잖아? 이런 거 우리 남유다 백성들도 먹게 된다면 좋은 것 아니겠어? (설교 중 메모 - 바벨론 왕 음식을 먹으면 바벨론의 사람이, 이세벨의 음식을 먹으면 이세벨의 사람이, 삼성의 돈을 받으면 삼성의 사람이, 애플의 사람이 된다. 돈을 먹는 자는 돈을 먹이는 자의 종이 된다. ) 밥 주는 바벨론에게 조금씩 잠식되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제공하는 환관장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 나는 바벨론의 음식으로 내 몸을 더럽히지 않겠소, 라고...



9.2~(화) 단1:10~21



학교 행정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은 자기 위험할 짓은 어떻게든 안 하려 한다는 것이다. 메뉴얼에 없는 애매한 부분 때문에 학생에게 당장에 내놓을 수 없는 복잡한 서류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확실히 해야 한다-는 말로. 한마디로 본인의 안전 때문에 학생의 수고를 요하는 것이다. 학교 직원은 학생을 돕는 직업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분들을 볼 때 괴리감이 있었다. 대신 난 내가 수고하는 스타일이었지.


이런 현대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바벨론의 환관장은 다니엘의 입장을 이해해 준 것 같다. 동시에 자신의 안위도 걱정한다. "이보게, 자네들이 물과 채소만 먹고 싶다는 건 납득이 돼.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네들의 얼굴이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유다 소년들보다 수척할 것 아닌가? 왕이 자네들의 얼굴을 보고 그 사실을 알면 내 목이 달아날 걸세." 그러자 다니엘은 과감한 제안을 한다. "일단 열흘만  저의 제안대로 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 얼굴과 다른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해 보소서." 


다니엘은 베지터리안으로서 성공을 거둔다. 다른 소년들의 얼굴보다 윤택해 보였다. 그리하여 환관장은 안심하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는 물과 채식을 공급하였다. 환관장에게 감동을 받는 것이, 나중에 느부갓네살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면 어떡할 것인가? 또는 환관장을 시기하거나 환관장 자리를 노리는 자가 왕에게 고했다면? "걔들... 채소만 먹어도... 얼굴이 좋아서... 괜찮더라고요..." 식의 변명이 왕에게 통하지는 않을텐데.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포로국 소년의 신념을 지켜주는 모습. 아마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환관장의 은혜를 오래도록 기억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 네 소년은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을 뛰어넘는 출중한 능력을 보였기에, 환관장도 이 범상치 않은 녀석들이 크게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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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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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시작

생각 2014. 8. 31. 23:03


꿈에서 깨는 듯 마는 듯 비몽사몽.

꿔왔던 꿈들이 하나 둘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중에 만든 블로그의 이름으론 괜찮은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을 강조하려고

Kingdom of God을 축약해서 KOG. 


상당히 투박하고 멋없다만 내 머리에서 나온 것치곤 만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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