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팀 음주 스캔들

추억 2015. 2. 17. 12:54

 2012년 봄, 청년부 찬양팀끼리 술마시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 선배가 찬양팀장인 나에게 얘기해 줄땐 그러려니 했는데, 타지에 있는 친한 형이 '너거 술처먹으러 다닌다며?ㅋㅋㅋ' 라길래 뒷이야기가 돌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론화되지 않고 떠도는 소문이었기에 어떻게 해명할까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에 글을 질러버리는 것이 제일 적절하다 판단했다. 수면 위로 띄우는 것이 긁어부스럼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진위판단불가적 망발성농후기담으로 인한 모든 불명예를 우리 찬양팀이 덮어썼는데 그걸 감내하며 잠잠해지길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1. 사람이 모인 곳을 사회라 합니다. 따라서 학교, 직장, 교회 모두 사회이고, 그 곳에서의 활동을 사회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회는 다양한 일이 벌어집니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였기에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3.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좋은 일, 나쁜 일, 즐거운 일, 슬픈 일 등 다른 모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은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4. 안타깝지만 교회 안에서도 나쁜 일과 슬픈 일은 생겨납니다. 갈등도 발생합니다.

5. 갈등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뒷 이야기로 도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회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 이면의 부작용이라 생각됩니다.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이해는 갑니다.

6. 최근 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찬양팀끼리 술을 마시러 다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7. 두어 달 전 이 이야기를 찬양팀장인 저에게 전해 준 선배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같은 이야기를 타지에 있는 선배에게 또 들었습니다.

8. 지난 주일 몇몇 선배들에게 물어봤는데, 종합하여 판단해보니 이미 소문이 돈 것은 몇 달 전이었고,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은 듯했습니다. 물론 처음 들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9. 헛소문은 그냥 덮어두는게 낫지 않을까, 긁어 부스럼 아니겠나, 하는 우려도 있지만, 오해는 풀고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10. 두 가지만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11. 첫째로, 저는 크리스찬의 음주에 관대한 편입니다. 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12. 신명기 14:26에서는 포도주와 독주를 가족과 함께 즐기라고 권합니다. (그것도 십일조를 가지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돼지와 같겠지만, 전제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술을 즐기라고 주신 것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딤전4:4 

13.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먹보에 술꾼'으로 불렸고, 잔치집에서는 취한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더 만들어 주셨습니다. 음주가 죄로 정죄되려면, 그 논리를 전개할 때 예수님은 걸림돌이 됩니다. 

14. 그렇다고 음주를 장려하려는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금주문화는 한국의 술문화와 음주의 역기능에 비춰볼 때 긍정적인 면이 큽니다. 귀한 전통이라 생각합니다.

15. 허나 그 귀한 전통이 한계효용에 달하는 지점은 그 전통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될 때입니다. "넌 왜 우리 규칙을 지키지 않지?" 이럴 경우 그 전통은 없느니만 못할 수 있습니다.

16. 제가 좋아하는 문구로 첫 얘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 

17. 둘째로, 찬양팀은 음주를 즐기러 간 적이 없습니다.

18. 토요일 연습이 마치면 10시가 넘습니다. 야식 생각 날 시간입니다. 가끔씩 선배들의 후원으로, 혹은 자체 회비로 치킨, 피자 등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19. 그럴 때마다 오늘 힘들었다, 한잔하러 가자, 시원한 주님 만나러 가자, 는 식의 농담을 종종 하는데, 여기가 오해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함께 술을 마신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20. 얼핏 보면 첫째(11)와 둘째(17)가 상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진 않습니다. 두 명제를 붙여놓으면 [죄라고 생각치 않지만, 즐기지 않았다] 고 정리됩니다.

21. 그것은 교회의 전통과 문화, 구성원들의 정서를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릴 권리를 양보하는 것,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14장에 근거하여.)

22. 그러나 찬양팀원들의 사적인 생활까지 통제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개인에 대해 단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압력은 일종의 폭력에 다름 아니며, 저는 그런 전체주의식 발상을 굉장히 혐오스럽게 생각합니다.

23. 저를 포함한 찬양팀원 중 누군가가 사적으로 가진 자리를 보고 "쟤 술 마시네?" 하는 어떤 사람의 말이 "찬양팀이 술 먹는다더라"는 식으로 재생산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문이 돌고 돌면  그렇게 왜곡될 수 있겠지요.

24.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입니다. 저 역시 이런 부분으로는 팀원들을 터치하지 않습니다. 친구와의, 가족과의, 친밀한 사이의 관계마저 종교인이라는 명목으로 재단하려 한다면, 사람을 살리는 은혜가 한순간에 숨통을 조이는 율법으로 탈바꿈하는 대단한 비극일 것입니다. 

25. 이상입니다.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내부의 암적 존재로 기능하는 풍문과 오해를 풀고자 긴 글을 썼습니다.

26.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맛 좋은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땐 물로 부산의 명물 생탁보다 맛있는 막걸리를 만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27. 함께 존중과 배려가 어우러진 청년부 공동체 만들어 나가요.^^

 

 

 

 

그럭저럭 공감을 얻었으나 전도사 사역나간 선배가 '이런 글은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논지의 지적을 해서 키보드배틀을 좀 벌렸다. 어쨌든 이후 찬양팀 음주에 대한 헛소문은 사라진 듯.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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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7 

1.  확실히 난 지도자 스타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케어하고 챙기는 것도 안 된다.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 기질을 거스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과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2. 찬양팀장과 찬양인도를 하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당. 난 내 능력과 인격에 비해 상당히 고평가받고 있다. 이건 겸손도 교만도 아닌 건조한 서술이다. 가령, 내가 8점의 사람이라면, 앞에 서는 이미지 덕에 10점의 사람처럼 비춰진단 얘기다.


3. 덕분에 청년부 회장 공천을 받았다. 외향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꼼꼼하지도 않기에 총무나 회계 할 스타일은 아니고, 부회장은 자매가 꾸준히 해왔고, 서기 하기엔 연차가 많고. 공천을 받는다면 회장을 받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었다. 흔히 하듯 굳이 막판까지 공천을 숨겨야 할 어떤 이유도 동의되지 않는다. 침묵이라면 모를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숨기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기만이다. 


4. 그래서, 할거냐.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한 그룹의 대표자 역할을 해내기엔 너무 우유부단하고, 카리스마가 딸린다. 이런 결점은 찬양팀에서 해왔듯 합의를 끌어내고 모두의 동의를 받는 민주적 운영을 할 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만, 의사표명에 적극적이지 않은 우리 공동체 기질상 마이너스 요인이다. 


5.  보통 리더들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탁월하지 않으면 온유함으로 그 부분을 보완하는 것 같다. 끌든 품든 한 묶음이 되어 간다고 말하면 얼추 맞을까. 나는 둘 다 아니다. 역량이 부족하다. 차라리 특유의 직관으로 날카롭게 통찰(이것도 썩 뛰어나진 않다만)하는 역할이 적합하다. 


6. IVF와는 달리 청년부는 교회 소속이다. 따라서 대외적인 활동이 많고, '이건 아닌데...' 싶은 일을 지시받을 경우가 걱정된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일을 꾹 참고 하는 것까진 용납된다만, 그걸 남에게까지 권해야 하는 상황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 나는 비판적인 성향의 사람이고, 그 성향은 내가 소속된 교회라고 해서 예외이지도 않다. 근래엔 조직 생활을 하며 이 성향이 많이 희석되었고, 가치와 현실의 괴리에도 침묵하는 비겁함을 내면화시켜가고 있다만,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다.


7. 나는 총회 때 이런 견해를 밝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사람들이 나를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싸이 다이어리에 공개로 썼던 글. 이땐 그 잔을 피했다. 하지만 1년 후 결국 들이켰고, 이 글을 쓰던 당시 예상했던 모든 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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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팀에 가기까지

 내가 정식으로 입사한 첫 직장은 대학교 행정직이었다. 대부분의 행정직이 그렇듯 실적 압박 없이 짜여진 일을 물 흐르듯 잡음 없이 잘 굴러가게만 하면 되는 자리였다. 계약직이지만 과마다 있는 학사조교보다는 업무상 상위부서이기에 딱히 위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슈퍼갑질 교수님들이 가끔 등장하는 것만 빼고.

 사무실에는 나를 제외하고 3~50대가 섞여 있었는데 정말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 분들만 계셨다. 내 평생 그런 좋은 분들만 구성된 곳에서 또 일할 수 있을까. 처음 하는 직장생활이라 미숙한 점도 많았고, 꼼꼼하지 않은 내 성격상 잔실수도 종종 있었지만 모든 상사들은 나를 잠깐 일하다 갈 계약직 말단직원이 아닌 한 명의 동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 주었다. 흔히 미생이 상사만큼은 비현실적이란 평가를 하는데, 나는 실제 그런 상사들을 모셨다. 상사 때문에 골머리 썩고 스트레스 받는 친구들의 푸념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윗분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일년의 계약기간을 채웠고, 재계약을 내심 기대했지만, 교내 취업률 높이기 일환으로 1년마다 계약직이 금년 졸업생으로 물갈이되는 흐름에 쓸려 나가게 될 상황이 되었다. 계약직을 뽑을 땐 당해 졸업생을 우선으로 선발하라는 공문까지 내려온 상황. 그런데 업무를 마무리하던 즈음, 여차여차 업무 관계로 만난 다른 부서 팀장님이 나를 '착하고 성실한' 사람 잘못 보셨어요아이로 봐 주셨고, 그분의 추천을 받아 교내 프로젝트 팀에 지원하게 되었다. 


팀 특성 

이 사무실은 국비를 받아서 재학생 대상으로 교육하는 곳이었다. 부서장과 부장급의 직책은 교수들이 맡았고 그외 행정직원은 모두 1년 단위 계약직.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까지는 계약 연장 가능. 하지만 부장급 교수들과 팀장급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이 프로젝트에 애착이 없었다. 내가 들어가고 2개월 후 팀 평가가 나오는데, 여기서 탈락하면 계약해지가 되면서 달콤한 시럽같은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에 계약직원들은 팀이 평가에서 탈락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좋은 평가를 받아 프로젝트가 이어지게 됐지만. 


한 해 예산이 국비로 약 3~40억이었는데 남겨도 이월되진 않기에 예산을 아낄 필요가 없는 구조. 말 그대로 물 쓰듯 돈을 펑펑 썼다.혈세따위 알게뭐람?몇 가지 기억나는 건...


1. 교수들 간단한 업무얘기 한답시고 회의비 명목으로 두당 1~2만원씩 올림. 물론 식사비로 지출한 금액이다. 무슨 이야기든 꾸미고 포장해서 회의록 만들어내는 건 아래사람 몫. 웬만한 직원들은 참석하지 않은 회의록쯤이야 거뜬히 만들어낸다. 회의록 내용은 소설을 써놔도 상관없고 회의록이 있다는 자체가 의미있기 때문이다.올림픽 정신회의록과 참석자 명단, 영수증 등은 지출증빙 자료로 보관한다. 다음 해 회계감사 때 모든 지출에 대한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

2. 진행하는 행사마다 현수막을 달고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데, 현수막을 항상 맡기는 업체에 맡긴다. 그 업체는 단가를 후려쳐서 높게 받는 편인데 우리 사무실은 내 돈 아니니 알게뭐람 하는 분위기. 저렴하게는 만오천원에 될 현수막도 이 업체는 두 배 이상 받는다. 매년 반복되는 행사라 현수막 날짜랑 장소만 바꿔서 쓰기에 디자인 할 것이 없는데도. 30만원이 넘어가면 2개 업체 견적서를 받아서 더 저렴한 쪽이랑 계약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합리적 지출을 위한 제동장치다. 그러나 이 업체는 자체적으로 타 업체 견적서도 만들어준다. 100만원 이상이면 3개 업체 견적서를 받아야 하는데, 당연히 다 만들어준다. 기념품 제작 업체 등도 다 마찬가지.

3. 복사기가 두 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량출력은 인쇄소에 맡긴다. 스테플러가 집어져 나오고 우리 시간 안 쓴다는 것이 이유.

4. 직원 전체가 연수회를 가장한 여행 명목으로 놀러간다. 2인 1실로 호텔 잡고, 쓰지도 않을 세미나실도 몇십 만 원 주고 대여한다. 연수회 현수막 들고 인증샷 남겨야 하기 때문. 맛있는거 진탕 먹고 술마시고 노래방 가고 호텔에서 자고 돌아와서 각종 영수증은 잘 꾸민 후 연수회 세미나 증빙자료로 제출.


리얼 이런 특급숙소를 2인 1실로 씀.


팀장과의 불화

 나 빼고는 전원 여자. 교회든 동아리든 여자들 틈에서 워낙 살아본지라 무리없이 적응할 줄 알았는데, 이제껏 겪은 곳과는 달랐다. 이제까진 상대를 미워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기본 개념이 깔려 있는 곳에서 살아왔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을 동료로 만나게 된 상황. 착한 사람들도 있고 성격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문제는 두 명의 팀장이 내가 견디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둘 다 계약직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이번 사무실에서 팀장을 달게 된 케이스라 그 눌렸던 것들이 아래사람에게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특히 우리 팀 팀장 인격이 아~주 특출났다. 본인은 일 중심이라 했지만 자기 감정 중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였다. 이미 그 팀장이 사무실에서 왕따 시켜서 내보낸 직원이 있었고, 내가 일하던 중에도 팀장의 갈굼에 한 명 그만뒀다. 내가 업무능력이 뛰어난 직원이 아니란 것과 팀장의 그 특출난 인격은 시너지를 냈고 따라서 갈굼 보존의 법칙은 나를 향했다. 직장 내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학생들을 학기 중엔 설계 수업 물품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이고 방학 중에는 현장실습 보내는 것이었다. 설계비 신청은 학기 후반에 몰리고, 현장실습 업무는 방학 전에 준비해야 하니 5월 중반부터 방학 초까지는 격한 야근에 시달렸다. 도무지 혼자 처리할 수준의 업무량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심지어 전화도 하루 오십 통씩 받았고, 피크 땐 하루에 백 통까지 받아본 적도 있다. 전화를 핸드폰으로 돌려놓으면 한 통화 하는 사이 캐치콜이 너댓개씩 뜨기도 했다. 그나마 학생들에겐 전임자 버프착하고 친절한 직원으로 평가받은 듯했다. 책임감은 강한 편이라 열한시든 열두시든 새벽 두시가 되든 일은 되도록 해놓고 갔다.팀장은 내 야근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6월 입사한 신규 직원에게 학기 중 업무를 넘겨주고 방학 중 업무만 담당하게 됐지만, 7월 초에 있을 전년도 사업비 회계감사를 준비해야 했기에 업무량 체감은 오히려 늘어났다. 


회계감사 준비

 회계감사 일정은 상술한 연수회를 가장한 여행 직후로 잡혀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전임자가 준비해놓은 서류를 보니 개판이었다. 그 개판 서류 중 상당수는 다행히(?) 신입직원이 맡게 되어서 한숨 돌렸지만, 나랑 스파크 튀던 팀장은 내 서류도 곱게 넘기지 않았다. 전임자가 공금으로 사먹은 두유와 집에 갖고 간 락스 영수증은 학생지원비로 조작해 넣었다. 학생들이 실습 후 제출해야 하는 실습록이 있는데, 약 80개 정도가 없었다. 그걸 팀장은 나더라 만들어내라고. 20일치 실습록을 80개 만들라니, 난 못한다고 버텼고 팀장은 밤을 새서라도 완성하라고 심술을 부렸다. 결국 내가 꼬리를 내렸다. 팀장은 두눈 부릅뜨고 내가 괘씸해서 다른 직원들 동원도 안 해주겠다고 말했다. 회계감사 전날 밤은 샜지만 완성은 못했다. 이틀에 걸친 회계감사 중 내 파트는 둘째날로 배정되어 밤을 하루 더 새야 했다. 이틀 밤을 새며 만든 조작된 실습록은 다행인지 불행인지회계사가 들춰보지 않고 넘어갔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회계감사를 지나며 팀장과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관계가 틀어졌다. 



퇴사를 마음먹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충분히 버텼다. 그만둘 생각을 하고 이전 사무실 계시던 분들과 얘기를 나눠봤으나 다들 조금 더 버텨보라는 조언을 하셨다. 그러리라 마음먹은 이튿날, 나에 대한 오해와 악의적인 왜곡이 섞인 충격적인 소문을 전해듣게 됐다. 발령 초반 서류 찾느라 캐비넷을 뒤적인 것과 기념품 예산 출처를 물어본 일은 사무실 뒷조사를 하는 내부고발자로 의심받는 근거가 되었다.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내 업무 도와주겠다며 학생보험서류를 갖고 가서 자기 방에 두고 퇴근해버린 말단교수에게 [죄송합니다만 연구실(행정직원 1명과 같은 방을 쓴다) 비밀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낮에 가져가신 서류에서 찾아볼 게 있습니다]란 문자를 보낸 것은 훗날 앞뒤 자르고 차포 뗀 채 '밤 늦은 시간 가정이 있는 여자 교수에게 개인 연구실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게 됐다. 당시 그 여자 교수는 나에게 문자를 아침에 봤다며 미안하다고 했는데 뒤로는 어떻게 얘길 한걸까?


 나를 추천한 분께 누가 될까봐 어떻게든 더 잘해보며 버티려 했으나, 이미 우리 부장교수가 저런 개소리를 그분께 얘기한 상황이었다. 내부고발자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느낌이랜다. 그러나 그분은 나를 끝까지 믿어주셨고, 여기서 계속 버텨봤자 나만 바보되기에 그냥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 판단하셨다. 나도 같은 생각. 그분께 죄송한 마음을 안고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둔다는 걸 전해들은 부장교수는 날 부르더니 내부정보 수집해서 어디 신고하려는 거 아니었냐고 대놓고 물어봤다. 당연히 아니지. 나 인생 복잡하게 사는 거 안 좋아하고, 생각하는 정의를 실천하며 살고 있지도 않다.분풀이라면 몰라도. 혼자 망상 속에 벌벌 떨었을 그 인간 생각하니 참... 설사 그렇다 한들 맞다고 말하겠냐.



 옆 자리에서 가끔은 팀장 같이 까기도 하며 솔직한 얘기 들어주던 신입 직원은 알고보니 나랑 했던 이야기를 몽땅 팀장에게 전한 것 같다. 어떻게 알았냐면 팀장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나한테 직접 물어보는 타입이었거든.화끈하죠 그 직원, 학과조교 출신인데 업무상 나랑 부딪힌 적이 있었고 안좋은 소문도 좀 들었지만 성격이 안좋다거나 술먹고 학생이랑 싸웠다거나... 알고보니 괜찮은 사람... 이라는 내 평가는 앞뒤가 다른 기회주의자의 한 면만 보고 내린 오판이었다. 굴뚝에서 연기 나면 그럴 이유가 있는 법이구나 싶었다. 직급은 같지만 내가 몇 개월 선임이었으니 앞에선 웃었던 것이겠지.


정리와 인수인계

 그만두기로 확정된 후, 업무관계에 있던 몇몇 교수님들이 그동안 수고했고 잘 해줬는데 아쉽다는 얘기를 들었다. 흔한 작별 인사지만 마음엔 위로가 되었다. 기업 출신 교수님 세 분은 기업에 몇십 년 있었으니 여초 사무실에서 남직원이 겪는 스트레스를 잘 안다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밥도 사 주셨다. 직장생활에서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고 느끼던 중 교수님들과의 마지막 식사는 내가 사회생활을 완전히 말아먹은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서 큰 위로가 됐다. 팀 차원에서는 송별회 그런 거 당연히 없었고, 있었다 한들 거절했을 것이다.그래서 안 해줬겠지


 기왕 나가기로 한 거, 퇴사일은 최대한 앞으로 당겨달라고 했다. 맘같아선 당일로 퇴사하고 싶지만 신입직원 채용 결재 선발 면접 인수인계 등 모든 절차 포함해서 가장 빠른 퇴사일을 선택했다. 인수인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뒷말이나마 덜 나오게 해보자고 마음먹고, 내가 받은 인수인계와는 차원이 다른 고퀄리티로 준비했다. 업무절차는 세세한 설명과 나만의 노하우까지 넣었고 전산시스템 사용은 하나하나 캡쳐 뜬 후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이 고퀄은 내 기준이고, 내 자료를 후임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진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 빠뜨렸을 수도 있겠지만, 혼신을 다해 만든 건 맞다.

 약 5일 동안 인수인계를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후임은 인생선배로서 너무 착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해줬다. 본인도 그렇게 살다가 많이 데였다며. 흠좀무. 드디어 퇴사일. 전날도 야근했고, 마지막 날인 당일 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팀장은 내 자료 중 몇백 명의 서류가 학과별로 나뉜 걸 학생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이미 학과별로 나뉜 자료기에 찾는데 무리가 없으므로 하지 않겠다고 개겼다. 마지막 날까지 숙여주기엔 너무 많이 쌓였다. 팀장은 아주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다가 나더러 그냥 사라지랜다. 예상치 못한 지시에 우물쭈물 하다가 거듭 소리를 지르길래 그냥 짐 챙겨 나갔다. 잘 됐지 뭐. 다른 직원이나 교수들과 인사도 못했다.마지막 인사는 접어두길 바래 오늘 단 하루만큼은영원히 안녕이다. 사요나라.


 나한테 밤 늦은 시간 문자를 받았던, 가정이 있는 여교수가 마지막 날 점심 먹자 그랬었는데 사정상 못먹게 됐다고 문자 보냈다. 아쉽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보자고 답이 왔다. 팀장이 여교수가 자기 딸한테 선물해준 장난감 받고는 '뭐 이런 촌스러운 걸 선물해주냐. 또 그 앞에 가서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해야겠네'라고 했던 걸 일러주려 한 건 아니었으나 나한테 왜그랬어요? 말해봐요? 정도는 묻고 싶었기에 좀 아쉽다.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퇴근길, 아니 퇴사길에 후배 집에 들러 내 업무 관련된 조교와 교수들에게 인사메일을 보내고 후임자한테 알려준 후 그 사무실과는 완전 작별...


안녕~~바이짜이찌엔


외전

인 줄 알았는데, 한 이주 뒤 착하고 나 많이 도와준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후임이 13일 입사, 내가 14일 퇴사니 근무일이 13, 14일 이틀 간 겹쳐서 총무과에게 지적받은 거다. 웃긴 게 당시 이거 내가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팀장이 신경질 내면서 문제 없다고 그냥 그 날짜로 사직서 쓰라고 했었거든. 본론은 이틀 치 급여를 환수해야 하니 사무실 통장으로 그만큼 돈 넣으라고(...) 한달 뒤 초과근무수당 형식으로 돌려준단다. 괜히 꼬장부릴 필욘 없으니 오케이 했는데, 나중에 돌려주는 돈은 마지막 날 아침에 일 안하고 갔으니까 하루치 제외하고 주겠단다. 팀장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이겠지. 난 협조해주는 입장인데 전혀 응할 필요가 없는 조건이다. 배째라로 나오니까 바로 다시 이틀치 주겠다고(...) 그렇게 하고 이 사무실과 인연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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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소르
,


어떤 용자가 맥도날드 알바노조를 만들다가 해고를 당했나보다.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24


몇 년 전 학부 시절, 약 8개월간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 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당시 시급은 4천원 대였다. 최저시급이었지만 최저시급이나마 제대로 지키는 곳이 맥도날드였기에 학생들 사이에선 그나마 괜찮은 알바자리로 통했다. 한달 60시간 이상 근무 시 4대보험 가입과 주휴수당이 나와서 총 월급은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나왔다. 물론 맥도날드 측은 최저시급이라는 단어를 살짝 틀어서 기본시급이라 명명한다. 



직급

점장과 부점장, 월급제 매니저, 시급제 매니저가 있고 그 아래로 크루 트레이너, 그리고 크루들이 있다. 크루가 짬 좀 먹으면 크루 트레이너가 되고 매니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무슨 시험을 보던가... 해서 매니저가 된다. 대졸 대상으로 매니저를 뽑는 경우도 있긴 한데 맥도날드는 대부분 알바생으로 시작해서 매니저가 되고 점장이 된다. 매장을 돌며 감시하는 OC라는 직책도 알바 출신이고, 심지어 맥도날드 사장도 알바 출신이라고 하니 알바생들은 솔깃할 만도 하다. 맥도날드의 인사정책은 기본적으로 저렇다. 인건비 절감과 인사관리 효율을 위한 것이겠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부분인 것 같다.



업무 분장

라이더(배달)를 제외하면 그릴과 카운터로 나뉘는데, 보통 남자는 그릴로 여자는 카운터로 보내는 경향이 있다. 훤칠한 남자애들은 카운터로 가기도 한다. 난 그릴이었다. 지금은 MFY(made for you)라는 방식이라 조금 다른데, 당시 그릴엔 빵굽기, 패티굽기, 튀기기, 드레스(햄버거 쌓기), 포장으로 분업되어 있었다. 평소땐 2~3명이 그릴에 있고, 사람 박터지는 런치때는 각 1명 혹은 드레스 2명으로 5~6명이 그릴에서 움직였다. 


이게 패티 굽는 그릴. 삼겹살도 잘 굽힌다.

라이더(배달)들이 겨울에 배달 다녀오면 난로처럼 쓰기도 한다.


카운터는 주문받는 애랑 메뉴 갖다주는 러너, 감자튀기는 애랑 음료수 뽑는 애로 나뉜다. 러너가 제일 빠릿빠릿하고 센스도 있어야 되기에 보통 짬 높은 알바로 배치한다. 카운터가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가르쳐주는 상황도 종종 볼 수 있다.하지만 러너가 실수하면 카운터가 총알받이 카운터가 엄청 바쁠 때 그릴인 나도 차출된 적이 있는데, 음료 뽑고 뚜껑 덮는 역할. DD(drink drop)로 불림. 물론 안 바쁠 땐 카운터 업무도 한두 명이 다 한다. 제일 짬이 안 되는 카운터 알바는 매장을 돌며 걸레질을 하는데 몸도 힘들고 얼굴도 팔리니 다들 가기 싫어하는 포지션. 라비라고 부른다.매니저랑 안 친하거나 찍혔다면 가게 되겠지


알바 시간

알바 시간이 고정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특징. 매장마다 60명이 넘는 알바가 있다. 자주 일하는 알바도 있고, 적게 일해서 한달에 15만원 남짓만 버는 알바도 있다. 매주 스케쥴이 나오고 그 스케쥴에 맞춰서 근무를 한다. 학교 수업 등 알바가 안 되는 시간만 넘겨주면 매니저가 스케쥴을 짜서 주는데, 갑작스레 일이 생기거나 하면 스케쥴을 바꿔주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누가 펑크냈다며 갑작스레 나와달라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 동호회?

일하다보면 직장이라기보단 동호회 느낌이 난다. 매니저들을 부를 때도 형 누나로 부르고, 같이 맥주도 마시고 여행도 간다. 젊은 남녀가 많으니 사귀고 헤어지는 것도 종종 있다. 일하다 보면 안 맞는 사람도 있고, 뒤에서 욕 먹는 일도 부지기수. 특히 스케쥴 매니저는 메인디쉬로 씹힌다. 자기랑 친한 사람 위주로 스케쥴 짜준다느니 하면서. 이 씹음이 극에 달하는 것은 바야흐로 시험기간 때. 이때는 대부분이 스케쥴을 원하지 않으므로 매니저도 알바들의 사정 안 봐주고 강행해서 짠다. 자연히 무단 결근이 제일 많이 생기는 시즌. 휴학생이나 전업 맥알바는 풀가동된다.


식사

음식점 알바의 메리트는 역시 식사가 아닐까. 4시간 이하는 작은 버거(불고기, 치킨 등), 4시간 이상은 큰 식사(빅맥, 더블불고기, 상하이 등) 가능. 단가가 비싼 베이컨토마토디럭스, 더블쿼터파운더 같은 햄버거는 불가능. 근데 규정상 불가능이지 원하면 다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배고프면 텐더나 맥너겟도 꺼내먹고, 남은 빵 구워서 먹고. 각종 소스와 재료를 섞어서 신메뉴도 만들어 먹는데 매니저와 친한 아이들이 만드는 걸 보면 별말 안함. 케이준 소스와 칠리소스를 섞어서 감자 찍어먹으면 꿀맛. 난 치즈버거를 좋아해서 네겹짜리 치즈버거도 만들어 먹어봤다. 


이게 패티2+치즈2 들어간 더블치즈버거. 4장씩 넣어도 더블쿼터보단 작다.


부당한 대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열받는, 속칭 꺾기로 통하는 조기퇴근. 매니저는 손님이 어느정도 올 것인지 예상하고 스케쥴을 짜는데, 예상과 달리 알바생은 많고 손님이 없는 경우에 높은 확률로 ㅇㅇ씨, 퇴근하세요. 란 말을 한다. 매출은 적은데 알바생이 많으면 매니저 실적에 반영되는 것 같다. 당연히 매니저랑 덜 친한 알바를 퇴근시킨다. 나도 몇 번 당한 일인데, 이거 진짜 열받는다. 기껏 일하러 나왔는데 손님 없다고 집에 가라니. 손님이 없으면 편하게 일하는데! 부당하단 생각은 했지만 애초에 불법이었다는 건 최근 맥도날드 노조 기사를 통해 알았다.


노동법상 유니폼 갈아입는 시간도 업무시간에 들어가지만, 맥도날드에선 알바시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휴게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매장으로 올라간 후 출근을 찍고, 일 마치면 퇴근을 찍고 내려와서 유니폼을 벗는다. 


노동법상 4시간 일하면 30분 휴식이 주어지는데, 맥도날드는 이걸 인건비 절감으로 잘 이용해 먹는다. 11:00~14:00까지 런치 러쉬가 끝나면 한가해 지는 틈에 휴식하고 오란다. 당연히 휴식시간은 알바비에서 빠진다. 가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 가야한다. 법적으로 30분 이상 휴식을 해야한다나. 다른 법은 몰라도 이런건 철저하게 지킨다.


이런 꿀휴식은 아니고... 

그냥 지저분한 휴게실에 앉아서 햄버거 하나 먹고 폰 보다 올라가는 정도.


근무시간 조작도 종종 있었다. 어쩌다 추가근무를 많이 하게 되는 경우,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면 +50%의 수당이 붙으니 8시간 이후의 시간은 다음날로 넣는 식의 조작.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퇴근시간이라 매니저한테 퇴근하겠다 하고 퇴근을 찍었는데 조금만 더 일해달라고. 출근 찍을까요? 물어봤더니 찍지 말고유인촌 일하면 자기가 조정해서 시간 늘려주겠단다. 두시간 반 추가로 근무했다. 나중에 월급 계산해보니 딱 그만큼 만원 가량 안 들어왔네. 퇴사 후 받은 월급이라 따지기도 뭣해서 당시엔 그냥 넘어갔지만...



정말 안타까운 건, 이십대가 할만한 알바 중 맥도날드가 그나마 근로기준법을 잘 지키는 편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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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형 중에 보험 쪽에서 일하는 분이 있다. 얼굴은 옛날부터 알았는데 말은 최근에 텄고. 도움되는 이야기 해줄 게 있다고 한번 보자며 연락이 왔다. 보험이야기겠거니... 했지만 마땅히 거절할 말이 없어서 약속을 잡았다.

 

퇴근 후 만나서 커피 한잔을 놓고 설명을 시작하는데, 처음엔 듣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갈수록 현대인에게 보험 가입이 필수라는 내용으로 귀결되는 깔대기식 내용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대놓고 말하진 못했다. 그렇다고 굳이 감춘 것도 아니다. '그만 하셨으면 좋겠네요' 라는 어필은 노골적으로 했다. 그 형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지만 애써 모른 척 하며 두 시간에 가까운 설명을 기어이 끝냈다. 





국민연금과 노후, 재해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놓았고 그걸 토대로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패드를 꺼내서 퀄리티 높은 PPT까지 보여줬다. 아마 본사 차원에서 만든 자료 같았고 이 형은 그 자료로 설명하는 법을 교육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짜증이 치솟은 나에게는 아 저건 또 뭐야.. 였을 뿐. 


그 형은 몇 번 강조했다. 보험은 사람을 돕는 직업이라 생각한다고. 고객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그리고 현재 설명하는 것은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꼭 보험을 들 필요는 없지만 가입하려면 도와주겠다고. 아, 예... 무한 긍정의 힘이 발동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꿀같은 퇴근 후 자유시간을 두 시간이나 빼앗긴 나에게 그건 변명이 못 된다. 어차피 본인은 영업 중인 것이고 나를 통해 실적을 올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부정하진 못할 거다.



나는 내 인맥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직은 도무지 못할 것 같다. 나와 관계맺고 있는 사람을 수익의 수단으로 본다는 것은 날 자괴감에 빠지게 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 그 형도 그랬으리라. 그런 딜레마를 결국엔 스스로를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승화시켰고, 그래서 그것을 그토록 강조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형의 논지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내가 거부하며 벗어나려 하는 헤게모니인 물질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었다. 돈을 안 모으면 비참하게 살게 되리란 주장을 계속해서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란 극단적이고 불쾌한 가정도 했다. 오늘의 행복은 미래를 위해 접어두라는 주장은 이미 많다. 그러나 행복은, 내가 겪은 바로는 학습되는 것 같다. 누적되어 쌓여가는 것으로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 더 행복할 수 있다.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서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하는 건 불안감을 더는 것이지, 행복과는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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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연설

펌글 2014. 12. 22. 11:25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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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회장이 선출되고 직감했다. 내년은 나겠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많은 부분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회장이 된 내가 교회에서 청년부에게 시키는 것은 하나도 거부할 수 있는 게 없다.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해야 한다. 일종의 바지사장 같은. 이게 2주 동안 내가 느낀 회장의 포지션이다.


 나는 사고 중심의 논리형 인간이다. 이 성향은 나의 강점이자 약점이고 양날의 검이다. 머리로 납득이 안 되면 도통 움직이질 못한다. 논쟁이 되더라도 의견 교환을 피하지 않고, 나와 반대되는 의견도 논리적으로 납득되면 존중하며, 감정을 앞세우지 않은 격렬한 토론이라면 악감정도 남기지 않는다. 수직적 지시와 관행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이제껏 하던 거니까' '원래 해야하는' 식의 주장을 들으면 속이 답답해진다. "원래가 어딨어요? 이제껏 왜 했냐고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 주세요." 


 교회 사역에서 '이거 대체 왜 하지?'란 질문에 납득되는 답을 얻기 힘들다. 다시 말해 동기부여가 안 된다. 그런 일에 청년부를 동원해야 할 때 정말 자괴감에 빠진다. 나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권해야 하는 상황이 달가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겨우 2주 됐는데, 회장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청년부 회칙에서는 회장은 본 회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봉건제도 속의 농노 같다. 할 일은 정해져 있고 넌 그걸 하면 돼, 같은 느낌.


 적절한 선에서의 타협. 이라고 위로하기엔 항상 양보할 것 같다. 그러나 시키는 일은 일단 하고 보자. 대신 그 일에 대한 평가는 날카롭고 냉정하며 신랄하게 할 거다. 단, 하지 않으려 했던 일이 좋은 결과를 내었을 때는 내가 틀렸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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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요. 찬양팀은 지금의 청년부에 제가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그런 찬양팀에 인사를 드리는 상황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08년 초부터 시작해서 잠깐 쉬기도 했지만, 7년이란 시간을 찬양팀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래서 찬양팀을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하며 내 삶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기에 해방감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실감이 큽니다. 

임원 등의 이유로 찬양팀을 그만둔 사람들이 공동체를 어색해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는데, 그 느낌을 알 것 같아요.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제가 팀장을 맡으며 계획했던 것이 공동체 안의 찬양팀으로 자리잡는 것이었습니다. 찬양팀이 그들만의 리그처럼 고립되어 가는 것은 찬양팀과 청년부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찬양팀 사역을 이유로 찬양팀이 공동체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했었고, 덕분에 저도 익숙한 찬양팀을 떠나는 지금이 막막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임원이 된 지 2주 남짓 지났는데, 임원이 그렇게 바쁠 일이 있나 싶었던 생각과는 다르게 제법 바쁘더라구요. '보이는 것이 보여지기 위해 보여지지 않는 영역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청년부 예배가 자연스레 물 흐르듯 드려지기 위해 노력하는 손의 수고가 적지 않음을 느낍니다. 찬양팀이든, 임원이든, 또다른 섬김의 자리든.

(12월 8일에 여기까지 적어놓고.... 급마무리 함-.-)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매주 이틀 얼굴 볼 사이인데 너무 거창하고 비장한(?) 인사 하는 것 같아서 급마무리 할게요ㅋㅋㅋ토요일날 만나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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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집 많은물소리를 편찬하신 황병구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펌.

오래 전에 긁어놨었는데, 읽을 때마다 가슴을 뛰게 한다. 

 

 

(이 글은 22년전 1989년 10월 서울대문화관에서 있었던 [경배와 찬양의 대축제]에서 했던 황병준 님의 간증문입니다. 일종의 사료에 해당하는 이 간증문을 페북 친구들과 나눕니다. 한국교회와 사회를 돌아볼 때 아직도 이 고백은 유효한 듯 합니다. 황병준 님은 당시 아크로폴리스찬양모임 및 뜨인돌 운동을 함께 시작했던 저와 동갑내기 오촌 친척입니다. 제가 당숙부이긴 하지만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 언제나 저보다 늠름했던... 그래미 어워드의 최우수 녹음상  수상 이후 클래식 녹음계의 거장으로 많은 음악인들과 뜻있는 작업을 진행하는 전문인이지요. 백주년기념교회에서는 찬양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관악학우 여러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사랑의 대학부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전기공학과 3학년 황병준 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제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느꼈던 기쁨과 아픔, 안타까움을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누기 위함입니다. 

 

제게 있어서 찬양은 기쁨이었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죄로 죽었던 나를 죽음에서부터 살리신 것입니다. 죄가 없던 시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의 모습이 회복된 것입니다. 더구나 나만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악의 세력과 불의를 멸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 통일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분이 온 우주의 주인이요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요. 그래서 저의 찬양은 기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특권인 동시에 본연의 자세요 기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제자의 길을 걷는 친구들과 또 선배님, 후배들이 찬양하는 것이 저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찬양하는 나의 모습 속에서 내가 무언가에 속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학부에서,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셨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왔을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신문의 뉴스를 볼 때,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분이 만물의 주인이심이 분명한데, 그리고 우리 학교의 주인이심이 분명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교의 친구들은 우리들을 중세시대 12C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금욕주의자, 순응주의자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자기 개인의 경건에 도취되어 모일 때마다 저들의 신에게 무엇을 달라고 부르짖는 자들로 보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은 아예 그들의 논쟁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큰 벽이, 절망감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학교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학교에 없었습니다. 이 국가와 민족의 주인이신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친구가 죽어가고, 폭력이,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에 우리는 여전히 이미 왕이 아닌 하나님을 왕이라고 골방에서, 교회에서 우겼습니다. 학내에서 친구들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고 전경들이 돌에 맞아 실신하는데도 우리는 그래도 하나님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십사고 늘어 놓았습니다. 이제 찬양은 내게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통이었습니다. 부담감이었습니다. 무언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너무나 확실하였기에 그분이 학교의 주인임을 온 세상의 왕이심을 알려야겠다고, 그리고 실제로 정말 실제로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선배님이 군대에 가기전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절대로 뭇 인간들의 알량한 투쟁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증거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모자라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습니다. 

 

작년 10월제 기간 중에 우리의 안타까움과 아픔을 모아 아크로에서 찬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옛날같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온전히 하나님이 우리 학교와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왕이시라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그의 거룩하신 공의를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것처럼 그분의 주되심을 세상에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고난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낮아짐으로 인해 그분의 주인되심이 세상 사람들에게 확인만 된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가난할 수도 있어야 하고, 고난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전하기 위해 부조리와 모순, 눈에 보이지 않는, 직접보이는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철저히 보수적이어야 하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철저히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한 신앙의 선배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 또한 약하디 약한 사람임을 인정하기에 그분께 매어 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것 같지만 금방 그분의 명령을 잊어 버립니다. 내가 이 정도는 하는구나 하고 교만한 마음에 빠집니다.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이렇게 살자, 십자가를 달게 지자, 가난하게 살자 라고 하고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호와를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 그렇지만 기쁘게 그분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그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왕권과 주권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그날이 곧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형제들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낮추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그분의 공의와 사랑을 위해 고난을 달게 받을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만족과 배부름을 위해 있었던 것을 다시 한번 회개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온전히 하나님께 경배와 찬송을 드리며 소외받고 억압받는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하려는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의 Incarnation이 나의 낮아짐이 되기를 전심으로 간구합니다.

 

끝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지만 부담스러워 하는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제 간증을 마치려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98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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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베다 위키

생각 2014. 12. 5. 13:21

약 한달간 리그베다에 빠져 살았다. 아, 너무 재밌어...


그러다가 우리 찬양팀 정보도 개그틱하게 써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처음 작성을 시작했는데, 이용자들에 의해 필요없는 문서 취급 받아서 삭제돼 버렸다. 워낙에 개신교는 다양하게 욕먹을 짓을 하는 종교이니, 내 글 역시 교회 홍보로 취급되어 불필요한 키배도 벌렸다. 교회 까는 거 젤 좋아하는 인간 순위권에 들어갈 나도 밖에 나가면 그냥 교회랑 같이 욕먹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같은 편이에요 다행히 블로그에 백업해둬서 자료는 안 날렸고. 리그베다에는 못 올려도 그 형식으로 내 블로그에만 올려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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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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